(조선일보 2020.05.04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어린이날이다. 집에서라도 아이와 잘 놀아주고 싶은 어른들을 위해 '놀이의 백과사전'을 준비했다.
네덜란드 화가 대(大)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the Elder·약 1525~1569)이 그린 '어린이들의 놀이'에는
유아부터 청소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어린이'가 무려 250명 이상 등장한다.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하는 놀이만
여든네 가지인 데다 대부분 단순하니 눈을 감고 그림 중 아무 데나 찍어서 나오는 걸 따라 해봐도 좋겠다.
대 피터르 브뤼헐, 어린이들의 놀이, 1559~60, 나무판에 유채, 118 x 161㎝,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소장.
근 오백 년 전 바다 건너 아이들 놀이인데 우리 눈에도 설지 않다.
그림 아래쪽만 봐도 공기놀이, 가마 태우기, 굴렁쇠 굴리기, 목마 타기, 말뚝박기 등을 금방 알아보겠다.
왼쪽 울타리에 모인 아이들은 물구나무를 서고, 난간에 매달리거나 여럿이 올라타 함께 말을 달린다.
인원이 많다면 울타리 앞에 기대앉은 아이들처럼 다 같이 무릎을 세우고 앉아 다리를 만들고 한 명씩 그 위를 건너는,
아슬아슬하고 신나는 놀이를 할 수도 있다. 울타리만 갖고도 다채롭게 놀 수 있는 게 어린이들,
아니 어쩌면 인간의 본능인지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놀이처럼 사람의 본성이 잘 드러나는 일도 없다.
둘 이상이 모여 규칙을 만들고 경쟁한 뒤 승패를 가리는 게 대부분의 놀이 아닌가.
그러다 보면 속임수를 써서라도 이기려는 이가 있고, 승패에 관계없이 즐기는 이도, 결과에 승복 못 하는 이도 있다.
당시 유행하던 시 중에 '신의 눈에 인간이란 유치한 놀이에 열중하는 아이들'이라는 구절이 있었다.
지적인 화가였던 브뤼헐은 바로 그 시처럼 세상사라는 놀이에 빠져든 어른 중 누가 신께서 보시기에
'모범 어린이'가 될지 묻는 것 같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04/20200504028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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