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동양화가 말을 걸다]당신은 누군가에게 마음의 고향이 된 적 있는가-장승업 미산이곡

바람아님 2014. 2. 4. 19:10
▲ 장승업 ‘미산이곡’ 종이에 연한 색, 126.5×63㎝, 간송미술관

대학교 2학년 가을이었다. 폴 발레리의 시를 읽다가 ‘바다는 나의 어머니(ma mer ma mere)’라는 구절을 발견했다. 어머니의 사랑은 바다처럼 넓고 넉넉하다는 뜻이다. 이 구절을,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 속에 수많은 의미를 함축시켜 넣은 기막힌 시구라고 사람들은 평가했다. 나는 선뜻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해 여름 전남 완도의 명사십리에 다녀온 기억 때문이었다.
   
   대학 동아리에서 수련회를 갔는데 장마철이었다. 2박3일 동안 바닷물에 발 한번 담가 보지 못하고 잔뜩 흐린 하늘만 보고 왔다. 발레리가 생략한 농밀한 표현 속에 내가 본 바다 풍경을 채워 넣자면, 바다는 희뿌옇고 아득하고 때론 거칠기까지 해서 도저히 마음을 내려놓고 기댈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기대기는 고사하고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 변덕에 휘말려 내가 앓아 누울 것 같았다. 그런 기억을 가진 내게 ‘바다는 나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절창(絶唱)이 아니라 펜 끝의 농세(弄世)였다. 모름지기 어머니라는 우주적 존재를 담으려면 바다 가지고는 부족했다. 적어도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누구나가 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투철한 그리움에 빠져들 수 있어야 했다. 그 단어가 내게는 ‘고향’이었다.
   
   고향은 그 단어만 생각해도 아련한 그리움이 피어오른다. 엄마를 생각하면 아무리 차가운 사람의 가슴속에도 맹목적 그리움이 차오르듯 고향이라는 단어도 그렇다. 고향은 아기가 태어나 처음으로 울음을 터트리며 세상에 손을 내민 곳이다.
   
   
   고향, 입에만 올려도 아련한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은 집 뒤에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었다. 집 앞에는 수령이 오랜 느릅나무와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한여름이면 마을 어른들은 풀 언덕에 나귀를 풀어 놓은 채 고목의 그늘 아래 정자에서 담소를 나누었다. 대숲 울타리에 올라간 장닭은 새벽녘이 아니어도 목소리를 돋우었다. 그럴 때마다 닭벼슬은 햇볕을 받아 맨드라미처럼 붉게 타올랐다. 한낮이 되면 들밥을 머리에 이고 가는 여인네 뒤로 개가 따라가는 모습이 보였고, 뒤이어 소를 탄 아이가 나타났다. 차나무를 심어놓은 몇 이랑의 돌밭 아래로는 고기잡이배가 떠다니는 푸른 갈대밭이 시작되었다. 모든 풍경이 고즈넉함 그 자체였다. 내가 살았던 고향 이야기가 아니라 장승업이 그린 ‘미산이곡(眉山梨谷)’의 이야기다.
   
   ‘미산의 배 골’을 그린 이 산수화는 누군가의 산장을 그린 것이다. 호방한 필치의 장승업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농묵이 강조되어 있다. 축축하게 젖은 농묵을 배경으로 소 탄 목동과 광주리를 인 아낙네의 모습이 정겹다. 나의 고향을 그린 작품이 아닌데도 마치 내 고향인 듯 느껴지는 건, 그림 속 배경이 우리네 시골의 낯익은 풍경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 속에는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처럼 ‘넓은 벌’과 ‘얼룩배기 황소’와 ‘발 벗은 아내’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지용이 이 작품을 보고 시를 쓴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장승업이나 정지용이 아니라도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향을 생각할 때 비슷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도 마음속에는 ‘미산이곡’ 같은 고향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산다. ‘꿀밤나무들의 푸른 살 냄새’(이기철, ‘산골에 오두막을 짓다’에서)를 맡을 수 있는 곳이라면 설령 그곳이 그림 속이라 해도 고향 같다. ‘살구꽃 핀 마을’만이 고향이 아니라 감나무와 밤나무가 심어진 마을도 어디나 고향 같다. 설령 그곳이 며느리밑씻개와 물봉선화만 자라는 폐허라 해도 고향은 고향이다.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모두 고향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객지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흔들리며 사는 사람들에게 당산나무 같은 믿음으로 남아 있다. 가슴속에 당산나무가 자라는 사람은 타지에서 견디는 시간이 아무리 무거워도 거뜬하게 일어설 수 있다. 내 비록 지금은 힘들게 살지만 언젠가는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단지 고향이 있다는 그 기억 하나만으로 사람들은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갈 수 있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다
   
   나훈아의 ‘고향이 좋아’라는 노래 속에는 고향과 타향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 명시되어 있다. 고향에 갈 수 없는 남자가 향수를 달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곁에 있던 친구가 위로의 말을 건넨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이 말을 들은 남자는 마치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버럭 화를 내며 강하게 반박한다.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은 타향은 싫고 고향이 더 좋다고. 마치 타향을 고향처럼 좋아하면 큰 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어조는 강렬하다. 고향은 그 남자에게 감히 그 어떤 장소와도 비교되어서는 안 될 성스러운 곳이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첫사랑의 기억처럼 얼룩 한 점이라도 묻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기억은 기억일 뿐이다. 현실이 아니다. 내가 태어나서 신나게 뛰어놀던 고향 마을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집도 변하고 마을길도 변하고 그곳에 들어와 살고 있는 사람들도 낯선 얼굴이다. 옛 친구를 만나도 마찬가지다.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사는 동안 나이 들어 얼굴이 변한 것처럼 생각도 변했다. 누구는 여당을 지지하고 누구는 야당을 지지한다. 누구는 주님을 찾고 누구는 부처님을 찾는다. 믿을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며 돈을 교주로 모신 친구도 있다. 너무나 변해버린 친구들을 보며 어제까지는 문득 생판 모르던 남들이 오직 관심사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금세 한 가족처럼 친해지는 동호회 모임이 그리워진다. 이쯤에서 나훈아의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라는 구절은 ‘타향이라도 마음에 맞는 친구가 있는 곳이 좋아’로 바뀌게 된다. 결국 고향에 가서 만나는 옛친구들과의 재회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그래도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보다 더 좋다. 내가 뿌리내리고 사는 곳은 어디나 고향이다.
   
   
   죽자 사자 고향으로 가는 이유
   
   내일모레가 추석이다. 사람들은 또 고향을 찾아 떠날 것이다. 도로는 귀향 차량들로 주차장이 될 것이고 휴게소는 귀성객들로 북새통을 이룰 것이다. 고향 가는 길은 이렇게 멀고도 험하다. 그걸 알면서도 길을 나선다.
   
   한때는 내 고향이 아닌 내 남편의 고향에 간다는 사실이 낯설던 시절도 있었다. 명절 때 내 고향도 제대로 찾아갈 수 없는 여자라는 서러움에 마구 화가 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무조건 화낼 일이 아니다. 일 년 내내 나를 위해 머슴처럼 일하는 남편에게 모처럼 휴가를 주는 날이 명절이 아닌가. 그동안 고생했다고, 부초처럼 흔들리며 살아온 그에게 자신의 뿌리를 찾아 더욱 튼튼히 살아가라고 격려해주는 자리가 아닌가. 나이 들어 더 이상 찾아갈 고향이 없게 되면 부부는 서로가 서로의 고향이 된다. 더 나이 들어 육신의 옷을 벗고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날까지 부부는 서로에게 등불을 켜고 기다리는 어머니 같은 고향이 된다. 그 고향을 찾아 나의 자식들과 손주들이 찾아올 것이다. 고향으로 가면서 나는, 우리는 어떤 고향으로 기억될 것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차마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고향인지 아니면 어서 빨리 잊어버렸으면 좋을 고향인지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