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21. 11. 25. 03:05
죽음만큼 확실한 것이 있을까. 이유와 시기가 다를 뿐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 그렇다고 모든 죽음에 애도가 따르는 건 아니다. 19세기 영국 화가 브리턴 리비에르가 그린 이 그림 속엔 죽은 자만 있고 애도하는 자는 없다. 개 한 마리만 있을 뿐이다. 왜일까?
(중략)
무기와 갑옷 등을 독점한 기사들은 오히려 기사도에 정면 배치되는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행위를 일삼기 일쑤였다. 그림 속 기사도 그리 기사답지는 못했던 듯하다. 가족, 동료, 이웃 등 아무도 애도하는 이가 없으니 말이다. 다만 충견만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고 있을 뿐.
https://news.v.daum.net/v/20211125030553512
어떤 죽음[이은화의 미술시간]〈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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