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3. 8. 15. 03:01
월북 화가 이쾌대·임군홍 작품, 아내가 굳게 지킨 덕에 세상 빛 봐
칸딘스키 연인 뮌터, 지하실에 칸딘스키 작품 숨겨 나치 탄압 비켜가
인내와 믿음, 강인한 고집… 그 힘이 남겨진 그림과 사랑을 지켜냈다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서울 명륜동 집에서 작업 중이던 마지막 그림 ‘가족’은 그림 속 가족이 집을 팔고 이사 나가는 순간까지 이젤 위에 그대로 놓여 주인을 기다렸다. 1950년에 북으로 간 임군홍 화백 이야기다. 월북한 가장이 남긴 그림은 함부로 노출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두 칸짜리 집에 산다면 방 한 칸은 온전히 부친의 작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집을 옮겨 다닐 때도 늘 작품 보관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고 그림 속 젖먹이였던 아들은 말한다. 생이별 현장에 기억의 화석으로 남게 된 그 그림들이 지금 전시 중이다.
이쾌대 화백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바다. 사상적으로 좌익계 민족주의자였는데, 잠시 전향했다가 다시 조선미술동맹에서 활동했고, 전쟁 중 체포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가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아껴둔 나의 채색 등 하나씩 처분할 수 있는 대로 처분하시오. 그리고 책, 책상, 흰 캔버스, 그림들도 돈으로 바꾸어 아이들 주리지 않게 해주시오.’
아이들 주리지 않게 해달라…. 눈물 나는 이 전언의 당사자가 휴전 후 선택의 갈림길에서 가족을 뒤로한 채 북행을 택했다. 아내는 남편 물건을 처분하는 대신 자력으로 아이들을 키웠으며, 연좌제로 지속적인 감시와 추궁을 받으면서도 부엌 천장 다락에 꼭꼭 숨겨둔 그림들은 그녀 사후 10년 만에야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https://v.daum.net/v/20230815030107699
[자작나무 숲] 남겨진 그림, 남겨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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