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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목에 걸린 가시 놔두고 진정한 화해는 어려워”

바람아님 2023. 8. 29. 05:53

조선일보 2023. 8. 29. 04:16

[日 관동대지진 100년… 묻혀진 조선인 학살] [3]

편집자주
한일 관계가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 중러 패권주의 등 전체주의의 도전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생존을 위해 한일은 미래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그렇다고 양국의 역사에 새겨진 과거까지 잊히지는 않는다. 1923년 9월 1일 일어난 일본 도쿄 관동대지진 당시 현지 조선인에 대한 일본의 학살 사건이 그중 하나다. 관동대지진 100년, 조선인 학살 100년을 맞아 시간 속에서 풍화된 아픈 역사의 흔적을 취재해 연재한다.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목에 걸린 가시’와 같습니다. 이 문제를 숨긴 채로 일본과 한국 두 나라가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을까요.”

일본 도쿄에서 최근 만난 입헌민주당의 스기오 히데야(杉尾秀哉·66) 참의원 의원(상원 의원)은 “진정한 화해를 하려면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역사와 마주하고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사과해 새로운 일·한 관계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1923년 9월 1일 규모 7.9인 강진이 도쿄를 덮치고 나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같은 유언비어가 번져 수많은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일본 정부는 공식 조사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치권에서 조선인 학살은 금기어처럼 여겨진다. 그 가운데 일본 방송사 TBS 기자 출신인 스기오 의원(2선)은 지난 5월 국회에서 다니 고이치 일본 국가공안위원장(장관급)에게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사를 요청했다. 일본 국회에서 의원이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를 공론화한 건 100년 만에 처음이었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100년이니 조선인 학살을 한번 더 제대로 조사해 줄 수 없느냐’고 제안한다면 괜찮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한국과 일본이 우여곡절 끝에 최근 관계 회복을 하는 듯 보여도 여전히 그 정도 말을 할 분위기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설령 한국이 요구해도 일본이 ‘그렇게 해봅시다’라 할 정도로 두 정부가 친한 관계는 아닌 것 같다는 얘기다. 양국 관계가 이전보다 좋아졌다고 해도, 일·한 관계의 현실은 역시 이 정도가 아닌가 싶다.”


https://v.daum.net/v/20230829041625050
“한일, 목에 걸린 가시 놔두고 진정한 화해는 어려워”

 

“한일, 목에 걸린 가시 놔두고 진정한 화해는 어려워”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목에 걸린 가시’와 같습니다. 이 문제를 숨긴 채로 일본과 한국 두 나라가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을까요.” 일본 도쿄에서 최근 만난 입헌민주당의 스기오 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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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정부 문서 “살해된 조선인 813명”

조선일보 2023. 8. 24. 03:05  수정 2023. 8. 24. 07:12

[日 관동대지진 100년… 묻혀진 조선인 학살] [2]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직후의 조선인 학살과 관련, 당시 조선총독부가 일본 현지의 내무성 집계를 신뢰하지 않고 도쿄 출장소 직원을 통해 피살자 수를 독자 조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일본 내무성은 조선인 피살자를 231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조선총독부는 그해 12월에 자체 집계해 추정치 813명이라는 문서를 남긴 것이다. 문서에는 ‘가나가와현은 추가 조사 중’이라는 단서를 붙여, 조선총독부조차 보수적으로 잡아도 1000명 이상이라고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야모키 교수는 “은폐의 증거로 볼 수 있는 문서”라며 “당시 3·1운동 직후였기에 조선총독부는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이 전해져 한반도의 일본 지배를 흔들까 봐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선인 학살 문제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문서에는 조선총독부가 한반도 내 조선인 학살 소식이 전파되는 것을 막았다는 ‘유언비어 대책’도 포함돼 있다. ‘일본에서 조선인이 살해됐다’는 사실을 전했다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115명이 조선총독부에 잡혀 형사 처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https://v.daum.net/v/20230824030522577
日정부 문서 “살해된 조선인 813명”

 

日정부 문서 “살해된 조선인 813명”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직후의 조선인 학살과 관련, 당시 조선총독부가 일본 현지의 내무성 집계를 신뢰하지 않고 도쿄 출장소 직원을 통해 피살자 수를 독자 조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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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 죽고나자 ‘학살 없었다’는 주장 나오기 시작”

조선일보 2023. 8. 22. 03:27

[日 관동대지진 100년… 묻혀진 조선인 학살] [1]
아라카와 학살 증언 모아온 日 ‘봉선화’ 니시자키 대표

“봉선화 운동을 시작한 1980년대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라며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일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도쿄 곳곳에 목격자가 살아 있었으니까요.” 지난달 28일 도쿄 스미다구(區)에서 만난 일본 시민단체 봉선화(일본 이름 ‘호센카’)의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64) 대표는 “어느새 증언자들이 모두 죽고 없어지자 ‘역사적으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같은 이들 말이다”라고 했다. 고이케 지사는 2017년 이후 7년째,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달라는 시민 단체의 요구를 거절하고 있다.

니시자키 대표는 “학살이 60년이나 지난 1980년대 와서야 증언이 조금씩 나왔다”며 “지역에선 금기시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가해자가 같은 동네에 살고 ‘옆집 할아버지는 살인자’라는 이야기일 수 있기에 누구도 선뜻 증언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시간이 흐르자 증언자들이 ‘죽기 전엔 이야기해야겠다’며 조금씩 말을 꺼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사람을 죽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죄 없는 조선인을 일방적으로 집단이 때려죽인 이야기”라며 “일본의 학교, 지역 사회, 가정 그 누구도 안 가르쳤으니 다음 세대는 모르게 되었다”고 했다.


https://v.daum.net/v/20230822032732752
“목격자들 죽고나자 ‘학살 없었다’는 주장 나오기 시작”

 

“목격자들 죽고나자 ‘학살 없었다’는 주장 나오기 시작”

“봉선화 운동을 시작한 1980년대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라며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일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도쿄 곳곳에 목격자가 살아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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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비석 하나만 남았다, 100년전 조선인 학살한 ‘日 관동 참극’

조선일보 2023. 8. 22. 03:27 수정 2023. 8. 22. 06:22

[日 관동대지진 100년… 묻혀진 조선인 학살] [1]

한낮 기온이 36도까지 오른 지난달 28일 오후 2시에 찾은 일본 도쿄 변두리 스미다구(區) 아라카와(荒川) 하천. 수십m 넘게 이어진 하천 둔덕엔 드문드문 나무 몇 그루와 함께 망초(亡草)·쑥·붉은토끼풀·갈대 같은 잡초가 무성했다. 구한말 조선이 망해갈 때 한반도로 들어와 조선인에게 ‘망초’로 불린 잡초가 핀 자리는 100년 전인 1923년 9월 100여 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한 곳이다. 학살 현장엔 죽은 영혼을 기리는 추도비는커녕 사건을 알리는 팻말조차 없었다. 이 부지가 도쿄도 소유라는 ‘점용자 도쿄도(占用者 東京都)’ 팻말만 보였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규모 7.9 강진이 도쿄를 덮쳤다. 목조가 대부분이었던 가옥은 화재에 휩싸였다. 요코하마·가나가와현·도쿄도 등 관동(關東·간토) 일대에서 10만5000명이 사망·실종하고 건물 10만9000채가 무너지고 21만2000채가 불탄 관동대지진이다.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일본 재향군인 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자경단(自警團)은 군대·경찰의 묵인하에 수많은 조선인을 학살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번지자 이를 믿고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정확히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본 정부의 공식 조사나 사과 없이 100년이 흘렀다.


https://v.daum.net/v/20230822032703750
작은 비석 하나만 남았다, 100년전 조선인 학살한 ‘日 관동 참극’

 

작은 비석 하나만 남았다, 100년전 조선인 학살한 ‘日 관동 참극’

<편집자주> 한일 관계가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 중러 패권주의 등 전체주의의 도전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생존을 위해 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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