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을 건너 책문으로 막 들어선 박지원은 국경 변방 시골 도시의 번화한 광경에 그만 기가 팍 질린다.
이 궁벽진 촌이 이럴진대 도대체 북경은 어떻겠는가.
얼굴이 화끈거려 이쯤에서 발길을 돌리고 싶어진다고 적었다.
연암은 자신의 이런 마음이 좁은 소견에 기인한 질투심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시방세계(十方世界·불교에서 전 세계를 가리키는 용어)'를 평등하게 바라본다는
석가여래의 밝은 눈을 부러워했다.
그때 마침 한 장님이 어깨에 비단 주머니를 둘러멘 채 손으로 월금을 타며 지나간다.
연암이 말한다. "저 장님이야말로 정말 평등안을 지녔구나." "열하일기" '도강록' 중의 한 대목이다.
장님은 못 보니까 눈앞의 광경에 질투를 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마음이 편안하다.
눈이 늘 문제다. 사람들은 대충 보고 겉만 봐서 판단에 착오를 일으킨다.
차라리 장님이 되면 마음에서 편견이 걷혀 사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일반적으로 정의의 여신은 왼손에는 저울을, 오른손에는 검을 들고 서 있다.
저울은 법의 공평한 적용을, 검은 준엄한 집행을 나타낸다.
게다가 그녀는 천으로 눈을 가린 모습으로 종종 등장한다.
감각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공정성을 상징한다.
눈을 가리면 볼 수가 없는데, 공정성이 보장될까?
그녀의 눈가리개는 1494년 알브레히트 뒤러가 제작한 판화에 처음 등장한다는 주장이 있다.
궤변으로 소송을 일삼아 사법기관의 업무를 마비시키는 브로커들을 풍자하기 위해 눈을 가렸다는 것이다.
앞도 못 보면서 저울과 칼을 들고 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무력한 법집행을 희화화했다.
이 그림이 전 유럽에 퍼지면서 어느 순간 원래의 풍자적 의미는 지워지고, 법의 공정성을 나타내는 의미로 바뀌었다고 한다.
눈은 자꾸 착각을 일으켜 바른 판단을 방해한다.
하지만 음대 입시에서 커튼을 쳐 놓고 연주하게 한다고 입시 부정이 근절되던가?
연암도 답답해서 한 소리지 정말로 장님이 부러워 한 말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대법원 앞 정의의 여신상은 검 대신 법전을 들고 높이 의자에 앉아 있다.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하다는 의미일 터.
그런데 검이 없고 자세가 편해서일까? 준엄함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눈을 가리고 있지 않지만 자꾸 인정에 휘둘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