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5.12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예술은 生의 신성함 반추하는 도구
지붕 수리에 몰두한 스님의 情景… 勞動과 희생의 숭고한 가치 일깨워
화사한 봄옷을 장에서 꺼내 들었다가 이내 다시 넣는다. 아직은 어두운 색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
지난 4월의 허망함과 고통스러움은 서서히 일상 속에서 희석되어 갈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너무 빨리 잊을까 두렵다.
예술은 현실 앞에서 때론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예술은 현실 앞에서 때론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마치 우리가 가라앉는 배를 어찌하지 못하고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던 것처럼 세상의 온갖 난제들을
풀어내기에 예술은 너무나 나약한 도구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예술은 쉽게 알아채기 어려운 일상의 진정한 가치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사진가 이갑철은 지난 20여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국인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집합적 정신의 원형을 사진에 담아왔다. 그의 '충돌과 반동' 연작에는 농촌과 어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각종 제례(祭禮) 의식을 통해서 산 자들이 죽은 자를 기억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근간에는 살아있는 자의 일상에 내재되어 있는 죽음의 의미에 대한 한국적 해석이 있다. 그의 사진에 찍힌 장소는 시골집의 앞마당이거나 제사를 준비하는 부엌이거나 깊은 산에 지어진 절처럼 특별할 것이 없는 곳이다.
사진가 이갑철은 지난 20여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국인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집합적 정신의 원형을 사진에 담아왔다. 그의 '충돌과 반동' 연작에는 농촌과 어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각종 제례(祭禮) 의식을 통해서 산 자들이 죽은 자를 기억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근간에는 살아있는 자의 일상에 내재되어 있는 죽음의 의미에 대한 한국적 해석이 있다. 그의 사진에 찍힌 장소는 시골집의 앞마당이거나 제사를 준비하는 부엌이거나 깊은 산에 지어진 절처럼 특별할 것이 없는 곳이다.
하지만 그러한 장소에서 그가 포착해낸 장면들은 사람이 태어나고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다가 저승으로 떠나가는 여정의 중요한 순간들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그가 사진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원시종교에서 삼라만상(森羅萬象)에 깃들어 있다고 여기는 혼령들이다.
그가 사진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원시종교에서 삼라만상(森羅萬象)에 깃들어 있다고 여기는 혼령들이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혼령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사진에서 혼(魂)의 기운을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살아있으면서도 이승에 완전히 속해 있지 않은 듯하고, 배경이 되는 장소들은 현실을 떠난 다른 세상처럼 보인다. 삶과 죽음을 공존시키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지점을 보여줌으로써 세대를 넘어 면면히 이어지는 노동과 희생의 숭고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진 속에 지붕을 고치는 스님을 보라.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지붕은 산자락과 맞물려 저 멀리 하늘로 이어진다. 지붕과 산과 하늘 사이에 올라앉은 이는 본래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았던 것처럼 일을 마치면 땅으로 내려오는 대신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자태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돌아갈 세상 저편을 향해서 다리를 놓듯이 묵묵히 고개를 숙여 일에 몰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에서 따분하고 무미건조한 노동의 비루함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오늘의 삶을 탄탄하게 만들고 나의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에 의해 이어질 일상의 신성한 가치를 확인시켜준다.
사진 속에 지붕을 고치는 스님을 보라.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지붕은 산자락과 맞물려 저 멀리 하늘로 이어진다. 지붕과 산과 하늘 사이에 올라앉은 이는 본래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았던 것처럼 일을 마치면 땅으로 내려오는 대신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자태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돌아갈 세상 저편을 향해서 다리를 놓듯이 묵묵히 고개를 숙여 일에 몰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에서 따분하고 무미건조한 노동의 비루함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오늘의 삶을 탄탄하게 만들고 나의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에 의해 이어질 일상의 신성한 가치를 확인시켜준다.
이갑철, 충돌과 반동, 해인사, 1993.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오지만 누구도 죽음에 익숙해질 순 없다. 그래서 타인의 죽음은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지금의 희생과 고통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미래에 우리가 이루게 될 변화와 성취가 오늘 상처받은 마음도 보상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또 다른 성과지상주의적인 착각에 불과하다. 오늘이 행복하지 않은 자, 마음이 병든 자에겐 영원히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 우리의 삶에 의미 있게 드리우도록 자신의 존재와 그것을 지속시키는 일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복원된 일상의 가치가 나의 죽음 이후에도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도록 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뼈 아픈 의무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 우리의 삶에 의미 있게 드리우도록 자신의 존재와 그것을 지속시키는 일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복원된 일상의 가치가 나의 죽음 이후에도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도록 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뼈 아픈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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