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사진을 찍으러 간 중량천에 유서 깊은 다리가 있어 간략히 소개합니다.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다리. 사적 제160호. 지정면적 1만618㎡.
일명 살곶이다리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 가장 긴 다리였다고 한다.
이 다리는 1420년(세종 3) 태종을 위하여 세종이 다리를 놓을 것을 명하고, 영의정
유정현(柳廷顯)과 당대 일류 건축가인 공조판서 박자청(朴子靑)으로 하여금 직접
공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그러나 홍수에 시달리고 강너비가 너무 넓어 교기(橋基)만
세운채 결국 중지하고 말았다.
그 뒤 63년이 지난 1483년(성종 14)에 다리를 완성하였는데 길이 78m(258자),
너비 6m(20자)였다고 한다. 살곶이다리(당시의 이름은 濟盤橋)는 거대한 돌기둥을
강에 세우고 그 위에 받침돌을 올린 다음 대청마루를 깔듯 긴 시렁돌을 깔아 통로를 만들었다.
이른바 행교이다.
4개의 교각 중에서 가운데 2개가 모두 15∼20㎝ 혹은 30∼40㎝씩 낮게 만든 것은 다리의
중량을 안으로 몰리게 하여서 그다지 큰 하중이 걸리지 않았던 당시에 다리의 역학적
안정을 꾀한 것이다.
돌기둥의 표면에는 정으로 쫀 흠집이 무수히 결을 이루어 물살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였다.
기둥은 한 변이 50∼55㎝에 높이 1.2m 정도이다. 그러나 상당한 부분이 모래에 묻혀 있다.
장방형의 기둥 위로 가로·세로 돌을 얹어 가구하여 놓고 다리 위의 바닥에는 세 줄로 판석을
깔아 수평이 되게 만들었다. 구성의 균형과 면밀함 및 각 부분 석재의 장대함과 소박함은
조선 전기의 교량기술의 장중한 멋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대원군 때 경복궁을 지으면서 석재를 보충하기 위하여 살곶이다리의 석재 절반을
썼기 때문에 폐교가 된 채 버려져 있다가 1972년 서울시가 복원하여 지금은 그 원형의
절반만 남아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위치 표시 지도
살곶이다리 전경
상판석(긴 시렁돌)
맞은 편에서 보는 살곶이 다리 전경
원형이 남아 있는 부분
좌측 절반이 원형, 우측 절반이 석재를 보충하여 축조한 부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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