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살아 있다는 감동

바람아님 2014. 11. 5. 08:35

(출처-조선일보 2014.11.05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최근 문상을 가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친구 부모님들이 한두 분씩 세상을 떠나시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사회생활을 하며 의례적으로 가게 되는 문상과 
친구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드리는 인사는 느낌이 다르다. 
어떤 막연한 분이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어릴 때 육개장, 멸치국수, 카레를 만들어 주셨던 
'그분'이 모두 내려놓고 가신 것이다.

혼자 운전하며 돌아오는 길, 잠시 철학자가 된다. 
인생의 굵직한 것과 시시한 것들을 한번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는 통찰력이 찾아오곤 한다. 
더 높은 곳에 오르고, 더 큰 것을 손에 쥐기 위한 우리 일상의 관심과 다짐들. 
이제는 세상을 떠나신 분들에게 이 진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면 무슨 코멘트를 하실지. 
왠지 "인생의 진미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말씀하실 것 같다.

[일사일언] 살아 있다는 감동선배 교수 중 10분마다 농담을 하는 분이 있다. 
그중 하나가 생각난다. 
장례식에 조문을 온 세 친구가 나눈 대화다. 
뚜껑이 열린 관에 누워 있는 시신을 보며 
한 친구가 물었다. 
만약 저 관 안의 시신이 본인이라면 조문객이 
어떤 말을 남길 때 가장 기분이 좋을까? 
한 친구는 "떠난 저 사람은 열정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던 학자였지"라는 말을 들으면 제일 좋겠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는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훌륭한 아버지였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구석에서 이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마지막 친구. 그는 이 말이 가장 듣고 싶다고 했다. "어라, 저 사람 지금 움직인 것 같은데." 
삶의 가장 큰 감동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다.

인생을 한껏 살다 간다는 것은 장관이나 
대부호가 되는 것도 아니고, 행복만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기쁠 때도 있지만 고독하게 우는 날도 있고, 
성공의 희열을 느낄 때도 있지만 
절망하는 날도 반드시 온다. 
그러나 이 모든 경험은 생명을 가진 자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이 가을, 마음속으로 어딘가 조문을 한번 다녀오는 것도 좋겠다. 
단풍 빛이 더욱 눈부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