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 부모님들이 한두 분씩 세상을 떠나시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사회생활을 하며 의례적으로 가게 되는 문상과
친구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드리는 인사는 느낌이 다르다.
어떤 막연한 분이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어릴 때 육개장, 멸치국수, 카레를 만들어 주셨던
'그분'이 모두 내려놓고 가신 것이다.
혼자 운전하며 돌아오는 길, 잠시 철학자가 된다.
혼자 운전하며 돌아오는 길, 잠시 철학자가 된다.
인생의 굵직한 것과 시시한 것들을 한번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는 통찰력이 찾아오곤 한다.
더 높은 곳에 오르고, 더 큰 것을 손에 쥐기 위한 우리 일상의 관심과 다짐들.
이제는 세상을 떠나신 분들에게 이 진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면 무슨 코멘트를 하실지.
왠지 "인생의 진미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말씀하실 것 같다.
![[일사일언] 살아 있다는 감동](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411/05/2014110500048_1.jpg)
그중 하나가 생각난다.
장례식에 조문을 온 세 친구가 나눈 대화다.
뚜껑이 열린 관에 누워 있는 시신을 보며
한 친구가 물었다.
만약 저 관 안의 시신이 본인이라면 조문객이
어떤 말을 남길 때 가장 기분이 좋을까?
한 친구는 "떠난 저 사람은 열정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던 학자였지"라는 말을 들으면 제일 좋겠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는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훌륭한 아버지였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구석에서 이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마지막 친구. 그는 이 말이 가장 듣고 싶다고 했다. "어라, 저 사람 지금 움직인 것 같은데."
삶의 가장 큰 감동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다.
인생을 한껏 살다 간다는 것은 장관이나
인생을 한껏 살다 간다는 것은 장관이나
대부호가 되는 것도 아니고, 행복만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기쁠 때도 있지만 고독하게 우는 날도 있고,
성공의 희열을 느낄 때도 있지만
절망하는 날도 반드시 온다.
그러나 이 모든 경험은 생명을 가진 자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이 가을, 마음속으로 어딘가 조문을 한번 다녀오는 것도 좋겠다.
단풍 빛이 더욱 눈부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