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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를 깨우는 33한 책,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바람아님 2014. 11. 9. 21:34

자유주의는 무엇인가, 名士들이 고른 책

(출처-조선일보 2014.11.08 박돈규 기자)



	나를 깨우는 33한 책 사진
나를 깨우는 33한 책

송복·복거일 엮음|백년동안|327쪽|1만5000원

"문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진화한 것이지 순간적인 혁명을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에 뻐근해진다.

신중섭 강원대 교수는 1980년대 말 경제학자 하이에크의 저서 '치명적 자만'을 읽고서야 
혁명이 아닌 진화를 신뢰하게 되었노라 고백한다. 
젊은이들이 사회주의에 빠져 있을 때였다. 
하이에크가 도덕을 이타심·연대성에 기초한 원시 사회의 도덕과, 
정직·성실·약속 이행 같은 거대 사회의 도덕으로 구분했다는 사실도 놀랍다. 
언어·법률·시장·화폐와 같이 도덕도 자생적 질서로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깨운 책으로 이영훈의 '대한민국 이야기'를 고른 박지향 서울대 교수는 "전제정치로부터 시민사회, 민주주의 성립에 
이르는 과정을 수십 년 만에 치른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며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어려움에 오늘날의 
잣대를 들이대고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후손들의 오만함의 극치'"라고 썼다.

자유주의 저작 33권을 해설한 '책 속의 책'이다. 
독자에게 자유주의를 설파한 고전을 안내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살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유주의라는 거울에 비친 세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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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함도 즐기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출처-조선일보 2014.11.08 이한수 기자)

자본주의 풍요로 여가 생겼지만 여유로움 즐기지 못해 무력감 느껴
철학자 파스칼 "도박·전쟁의 원인", 하이데거 "지루함은 가능성의 발로"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책 사진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최재혁 옮김 한권의책|376쪽|1만9000원

'인간의 불행은 방에 꼼짝 않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저 방에서 가만히 있으면 좋으련만 당최 그러지를 못한다. 
그래서 굳이 불행을 초래하고 만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이 지루함에서 
비롯한다고 말했다.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먹고 살 만하다면 느긋하게 집구석에 있으면 좋을 텐데 굳이 
밖에 나가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지루해하기 때문에 도박을 하거나 전쟁까지 벌인다고 파스칼은 말했다.

토끼 사냥의 목적은 토끼가 아니다

지루함을 견딜 수 없어 기분전환을 찾는 것인데도 어리석은 인간은 자신이 추구하는 
일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파스칼은 '토끼 사냥'을 예로 든다. 
사냥하러 나가는 이에게 파스칼은 짓궂게 장난한다. "토끼 사냥 가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걸 드릴게요" 하며 토끼를 건네는 것이다.

토끼 사냥 가는 사람은 분명 언짢아할 것이다. 
목표로 하던 토끼를 손에 넣었는데 왜 싫어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토끼를 사냥하러 가는 사람은 토끼를 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냥에 나서는 사람은 사냥감을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루함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방을 나선다는 것이다. 
좀 더 철학적으로 말하면 지루함이라는 비참한 인간의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사냥감을 손에 넣는 일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토끼라는 '욕망의 대상'과 지루함이라는 '욕망의 원인'을 착각하는 것이다. 
도박하고 싶은 욕망도 돈을 따겠다는 이익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게 욕망의 원인은 
아니다. "매일 돈을 줄 테니 도박을 그만두라"고 한다면 그만두게 될까. 
도박꾼은 돈을 따기 위해 도박한다고 굳게 믿지만 진정한 원인은 그게 아니다.

풍요에서 오는 한가함과 지루함

저자 고코분 고이치로(40·다카사키경제대 교수)는 일본 비평계에 떠오르고 있는 
젊은 철학자다. 이 책은 일본 대형서점 기노쿠니야가 선정한 '올해의 인문대상'을 받았다. 번역서 제목처럼 '언제'에 초점을 맞추진 않았다. 
유목생활이 정착생활로 바뀌면서 시간적·경제적 여유를 얻게 된 인간은 지루함을 
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지루함이 단지 정착생활의 결과라는 말은 아니다. 
지루함은 더 근원적인 인간의 존재 양태다. 
유목민이 지루함을 몰랐던 게 아니라 정착생활로 인해 지루함은 인간이 삶에서 정면으로 맞서야 할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파스칼은 인간 불행의 원인을 지루함에서 찾는다. 새로운 물건을 계속 소비하고 쾌락을 추구해도 지루함은 치유되지 않는다. 저자는 한가함을 즐기는 훈련을 하라고 조언한다
파스칼은 인간 불행의 원인을 지루함에서 찾는다. 
새로운 물건을 계속 소비하고 쾌락을 추구해도 지루함은 치유되지 않는다. 
저자는 한가함을 즐기는 훈련을 하라고 조언한다. /토픽이미지
원제는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暇と退屈の倫理學)'이다. 저자는 한가함과 지루함을 구별한다. 한가함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시간으로 객관적 조건이라면, 지루함은 
뭔가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감정이나 기분으로 주관적 상태다. 
초기 자본주의 노동자들은 한가한 시간 없이 장기간 노동에 매달려야 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20세기 이후 현대인은 한가함을 얻었다. 
풍요가 여가를 준 셈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가함을 살아내는 기술을 갖지 못하면서 
지루함이 고개를 빳빳이 들게 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현대인은 어렵게 얻은 한가함마저 
TV광고가 권하는 방식으로 똑같이 소비한다. 그러면서 여전히 지루해한다.

즐기는 능력을 훈련하라

지루해하지 않고 한가함을 살아내는 기술이란 뭘까. 
400쪽 가까운 이 책은 이 해답을 찾기 위한 지적(知的) 여행이다. 
저자는 파스칼, 러셀, 니체, 칸트, 하이데거, 마르크스, 아렌트, 아도르노, 들뢰즈 같은 
철학의 거인(巨人)들이 말하는 한가함과 지루함을 꼼꼼히 섭렵한다. 
인류학·고고학·경제학·소비사회론·동물행동학 등도 종횡무진 누빈다.

하이데거는 지루함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능성의 발로라고 했다. '인간은 지루해한다. 그렇기에 자유롭다.' 
하이데거는 '결단'이라는 처방을 내린다. "결단함으로써 인간의 가능성인 자유를 한껏 
발휘하라!" 장황하게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정해서 산뜻하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하이데거에 반기(叛旗)를 든다. "결단을 권하는 하이데거는 결단이 
필요해지는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내도록 재촉하는 것은 아닐까?" 
맹목적 결단은 세상 일에 좋아서 빠져드는 것과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즐기는 능력을 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TV광고나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춰 맛있는 음식, 재미있는 영화 같은 오락을 그저 
소비하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발견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지루하고 뻔한 결론 아닌가. 
저자는 영리하게도 이렇게 말한다. 
결론만 보니까 그렇지, 
이 책을 통독하는 '과정'을 거치면 이미 의미를 갖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