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완전 사용 시간 넘나드는 '루시'… "인간은 소유 아닌 시간 통해 존재"
'인터스텔라'는 상대성이론 응용, 중력 차이로 달라진 시간 때문에
가족과 같은 시간대에 살지 못해… 시간이 가진 엄청난 무게감 환기
요즘 할리우드 영화들은 멍청하게 장르의 자기 복제만 반복하지 않는다.
푹신한 어둠 속에서 팝콘이나 우적거리며 보기엔 영화가 말하는 담론(談論)들이 꽤 심상치 않다.
한국 배우 최민식의 등장으로 화제를 모았던 '루시'는 하이데거의 철학책에나 나올 법한 문구를
주인공 루시(스칼릿 조핸슨)의 입을 빌려 멋지게 읊조린다.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시간이에요. 시간이 없으면 우린 존재하지 않아요."
'인류 최초의 여성'과 같은 이름을 가진 루시는 치명적인 사건으로 뇌의 100%를 사용하게 된 인물이다.
보통 사람들이 평생 뇌의 10%도 사용하지 못하는 걸 감안하면 루시의 뇌는 가히 미친 성능에 가깝다.
그런데 그녀가 이처럼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과정이 흥미롭다. 강제로 암거래 조직의 운반책이 된
루시는 복부에 미지의 합성물질을 담게 되고, 외부 충격으로 이 물질이 몸속에서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뇌 사용량이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소유욕이 빚어낸 괴물인 루시는 미래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써야 하는 대신 과거의 시간을 무한대로 넘나드는
능력을 갖게 된다. 미래와 직면해 있는 동시에 과거를 짊어진 현존재(現存在)로서의 인간이 진지하게 말한다.
인간은 소유가 아니라 시간을 통해서만 존재한다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는 시간을 좀 더 적극적인 이야기 소재로 불러온다.
뤽 베송이 '존재와 시간' 개념을 철학책처럼 다소 설명조로 늘어놓았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훨씬 복잡하게 시간의 층(層)을 쌓아 나간다.
그가 제시하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다.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놀란 감독은 이를 응용해 우주에서의 1시간이 지구의 7년이 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중력의 차이에 따라 달라진 시간 흐름 때문에 영화 속 주인공은 죽음을 앞둔 반백(半白)의 딸과 젊은 모습으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다. 요즘 할리우드 영화의 지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일조한 감독답게 놀란의 영화는 퍼즐처럼
복잡하게 꼬여 있는 시간의 카오스를 펼쳐낸다. 그는 복잡하게 뒤엉킨 시간, 블랙홀과 화이트홀이 뒤엉킨 웜홀이라는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游泳)하면서 그 안에 숨어 있는 질서를 발견해보라고 제안한다.
게임의 패는 물론 감독이 쥐고 있다.
'인터스텔라'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영화이자 우주에 있는 미지의 존재에 관한 영화이고 웜홀이라 불리는
우주의 빈틈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SF영화라면 외계인과 대치하는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펼쳐지겠지만
'인터스텔라'는 시간의 굴곡 때문에 더 이상 가족과 같은 시간대를 살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우주의 심연 속에 절절히
던져놓는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한때 나사 소속의 우주비행사로 일했던 주인공 쿠퍼(매슈 매코너헤이)는 현실의 '틈'에
숨어 있던 시공간이 뒤엉킨 다층(多層)의 세계를 통해 어린 딸과 교신하고 현실로 복귀할 수 있는 해답을 찾아낸다.
하지만 이미 우주에서 다른 시간의 변곡점을 통과한 쿠퍼가 현실의 그들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다. 그가 택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시간대를 살았던 여자를 찾아 다시 우주로 떠나는 것뿐이다. 그들은 살아있지만 결코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루시'와 '인터스텔라'는 시간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무게감을 새삼 환기시킨다.
째깍째깍 바늘 위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시간이 존재의 빈틈을 타고 무겁게 파고든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투명한 시간들이 끊임없이 나를 향해 흘러들고 있다.
이 현실을 자각했다는 것만으로도 두 영화가 던져준 메시지는 결코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