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혜의 트렌드 돋보기] '밤하늘의 트럼펫'
(출처-조선일보 2014.12.10 김수혜 사회정책부 기자)
스위스 기업가 하인리히 오스발트(1917~2008)는 연매출 4조원의 다국적 식품회사
임원을 거쳐 스위스 최대 민영 미디어그룹 CEO를 지냈다.
평생 한 여자와 해로하며 두 아들을 낳았다.
여든 넘어 부인과 사별한 뒤로는 동년배 여자친구와 잔잔한 황혼 로맨스를 즐겼다.
그런 그가 91세 생일을 두 달 앞두고 자택에서 두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자살이었다.
오스발트의 자살은 고정관념과 들어맞지 않는다. 외로운 것도, 가난한 것도 아니었다.
올 초 미국 오리건주에서 스물아홉 살 말기 암 여성이 의사가 처방한 독극물을 삼킨 적이 있다.
오스발트도 정확히 같은 방식을 취했지만 미국 여성과 달리 불치병도 없었다.
고혈압 등 몇 가지 지병이 있었지만 그만하면 정정했다.
그는 오로지 "삶에 포만감을 느낀다"는 이유로 자살을 택했다. 충분히 살았으니 그만 떠나겠단 얘기였다.
자신의 선택을 '합리적 고령 자살(old age rational suicide)'이라고 요약했다.
우리 식으로 하면 곡기(穀氣)를 끊는 것이 그나마 근접한 개념일지 모른다.
사진작가인 차남 울리 오스발트(62)는 아버지의 마지막 1년을 지켜본 뒤 '죽음을 어떻게 말할까'라는 책을 썼다.
'한국인의 마지막 10년' 시리즈를 취재할 때 한국어판이 나왔다. 읽고 찡했지만 동시에 울컥했다.
스위스에 이메일을 보내 "왜 안 말렸느냐"고 물었다.
울리는 "아버지는 누가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했다.
고인은 마지막 1년 동안 자기 삶을 침착하게 정리했다.
자살 결심을 자식들에게 털어놓고 참을성 있게 설득했다.
"가족 말고 다른 사람에겐 함구하라"고 당부했다.
이어 친구들을 초대해 마지막 생일잔치를 했다.
자기 부음을 보낼 명단을 스스로 작성했다.
그는 아들에게 "장례식을 단출하게 치르라"고 일렀다.
장례식 때 연주될 추모곡도 직접 골랐다.
트럼펫 주자가 한국에도 잘 알려진 명곡 '밤하늘의 트럼펫'(동영상 링크)을 불었다.
고인과 절친했던 사람들이 숙연하게 귀를 기울였다.
이메일에서 울리는 "아버지는 자기 삶을 저울에 달아보고 '계속 살 만큼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장차 닥칠 장애를 면하기 위해, 의료진에 의존하는 상황을 면하기 위해, 친구들을 먼저 보내는 슬픔을 면하기 위해….
아들이 보기에 아버지는 이런 많은 것을 면하기 위해 먼저 비상구를 찾았다.
울리는 "내가 슬프다고 아버지를 억지로 붙잡는 게 오히려 부도덕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조력(助力)자살이 옳은가 그른가 여기서 논할 생각은 없다.
조력자살을 합법화한 나라는 스위스와 벨기에를 포함해 한 손에 손꼽을 정도다.
울리의 말 중에 우리가 정작 귀담아들을 대목은 "아버지와 함께하면서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다.
마지막 1년 동안 부자는 깊은 얘기를 터놓고 했다.
그 추억이 아들을 성장시키고, 남은 생애 내내 아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울 것이다.
울리는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더 이상 공포스럽지 않다"고 했다.
==============================================================================
(출처-조선일보 2014.11.22 진상훈 기자)
[북리뷰] 죽음을 어떻게 말할까
윌리 오스발트 지음|김희상 옮김|열린책들|176쪽|1만1800원
지난 2009년 '김할머니 존엄사 판결'이 있었다.
우리 사회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논쟁에 다시 한번 불을 지핀 사건으로 꼽힌다.
당시 식물인간 상태로 죽음을 앞뒀던 김할머니의 가족들은 의미없는 연명치료 대신 스스로
품위있게 죽음을 선택해 줄 수 있도록 법이 허용해 줄 것을 요구했다.
재판은 3심까지 간 끝에 결국 대법원은 가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김할머니 사건이 있기 전에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자는 주장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 하지만 실제로 법원이 받아들이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경우에는 존엄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를 퇴원시킨 병원 의사와 유가족들은 법적으로 처벌을 받았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찬반 논쟁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불필요한 연명 치료 없이 인간답게 깨끗이 죽도록 허용해야 하자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폭넓게 제기돼 왔다.
그러나 네덜란드와 벨기에, 미국의 일부 주(州)만 합법적인 권리로 받아들였을 뿐,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법 테두리 밖에 있다.
스위스의 언론인인 저자의 이 책은 스스로 죽음을 택한 아버지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쓴 자전적 에세이다.
그의 아버지 하인리히 오스발트는 스위스의 이름난 전문 경영인(CEO)이다. 91세가 되던 지난 2008년 스위스의
조력 자살단체인 '엑시트(Exit)'의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했다.
하인리히 오스발트가 택한 죽음을 유럽에서는 '자유죽음(Freitod)'이라고 부른다.
독일 철학자 니체가 주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자유로운 죽음에 관하여'를 언급한 데서 따왔다.
그전까지 쓰였던 '자살(영어 'suicide', 독어 'suizid')'이라는 말이 충동적이거나 더 이상 삶을 감당할 수 없다는
소극적인 개념인데 반해,
이 단어는 당사자가 온전히 적절할 때 스스로 삶의 마침표를 찍을 시기를 선택한다는 의미로 최근 많이 쓰이고 있다.
저자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90년 이상 삶을 지탱해 온 만큼이나 품위있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것도
인간에게 당연히 부여되어야 할 권리였다고 주장한다.
하인리히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들 형제와 오랜 갈등을 봉합하고 화해하는 모습과 새로 맞은 아내,
친구 등 주변 지인들과 이별을 고하는 모습도 담담하게 기록된다.
저자에게 아버지는 한평생 가까이 가기 어려운 '벽'이었다.
아버지는 일찍부터 기업체 임원과 CEO로 성공했고, 말년에는 스위스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위원회의 주요 인물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성공가도를 달린 그는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두 아들에게 항상 완고하고 고지식한 아버지였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그 동안 삶의 궤적을 정리하기 위해 두 아들을 불러 도움과 조언을 얻기 시작한다.
비로소 부자(父子)는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한다. 아들 형제는 평생 어려운 존재인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가 죽음 앞에 선 모습을 보고, 평생 가족의 미래를 근심하고 두려워한 약한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노년에 이르러 어떻게 삶의 마감을 준비해야 할까. 앞으로도 사회적 논쟁거리일 것이다.
인간답게 죽음을 택할 권리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하지만 이를 법으로 허용할 경우 삶을 너무 쉽게 포기할 가능성은 없는 걸까.
우려할 만한 근거가 없지 않다.
이 책은 의미 없는 연명 치료보다는 예정된 시간표를 받아들여
주위와 작별할 수 있게 하는 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기울게 한다.
'人文,社會科學 > 책·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 조선풍속사(전 3권) (0) | 2014.12.14 |
---|---|
[서평] 우울한 날, 마음 밝혀준 책들 - 2014 올해의 책 (0) | 2014.12.14 |
[서평] '미주(米洲)의 인상(印象)', 김대식의 빅퀘스천 (0) | 2014.12.07 |
[서평] 1)중국_당시의 나라 / 2)그때 장자를 만났다, (0) | 2014.11.29 |
[서평] "고려 武臣시대는 암흑기 아니었다" (0) | 2014.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