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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선풍속사(전 3권)

바람아님 2014. 12. 14. 21:55

화폭 속 조선시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다


조선풍속사(전 3권)

강명관 지음|푸른역사|각 432, 344, 288쪽|

각 2만1000, 1만9000, 1만8000원

담뱃가게 사내· 빨래터 여인· 엿장수… 

생생한 그들의 삶

'조선의 뒷골목 풍경'(2003년)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2007년) 등 조선시대 생활사를 
탄탄한 사료 고증과 칼칼한 입담으로 풀어내 
독자들의 눈높이를 올려준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가 이번에는 조선 후기 풍속화를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놓는다. 모두 3권으로 된 '조선풍속사'의 
1권 '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는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의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그림 25점을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2권 '조선 사람들, 풍속으로 남다'는 단원과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1758~?)을 제외한 조선시대 화가들의 풍속화를 
중심으로 엮었고, 
3권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는 신윤복의 그림을 통해 조선의 풍속을 엿본다. 
1권과 2권은 이번에 처음 출간했고, 3권은 2001년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됐던 책의 개정판이다.

저자의 시선은 풍속화의 미술적 가치보다 그림 속 인물의 행동과 사물들에 깊이 닿아 있다. 
단원의 풍속도첩 중 '담배 썰기'는 어찌 보면 평범한 그림이다. 
웃옷을 반쯤 벗어젖힌 사내가 작두로 담배를 자르고 있고 왼쪽 아래 사내는 책을 읽으면서 웃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사내가 읽고 있는 책은 소설책이다. 
이덕무의 '은애전(恩愛傳)'에는 한양 종로 거리의 담뱃가게에서 소설을 읽어주는 사람이 주인공인 영웅이 좌절하는 대목을 
실감 나게 연기하며 읽다가 이를 듣던 사내에게 칼로 찔려 죽은 사건이 나온다. 사내는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소설 읽어주는 사람을 죽인 것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조선 후기의 담뱃가게가 서양의 카페처럼 사람들이 모여 
소설도 읽고 이야기를 나누던 사교 공간임을 감지한다.

혜원 신윤복의‘기다림’. 화사한 봄날 옆 얼굴만 보이는 여인이 
담장 옆에 기대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여인의 손에는 스님들의 
모자인‘송낙’이 들려 있다. /푸른역사 제공
담배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과 여러 문인의 개인 문집 등을 샅샅이 뒤져 담배가 17세기 초 일본에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벼슬아치와 부녀자, 어린아이와 종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사회문제가 되었음을 말한다. 
대동법을 만든 김육, 문장가 이식, 노론의 정신적 스승 송시열은 담배를 혐오했던 반면, 조선시대의 문장가 장유는 
골초였고 다산 정약용은 귀양살이하는 사람에게는 술이나 차보다 담배가 더 좋다고 예찬했다.

저자는 풍속화를 실마리로 삼아 우물가·빨래터·길쌈·타작·활쏘기·주막·씨름·옹기장이·짚신 삼기·엿장수·개장국·냉면·
기와 올리기 등 조선시대 사람들의 의식주(衣食住)를 세세하게 복원한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박람강기(博覽强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엿장수는 언제부터 가위를 썼을까. 
19세기 말 활동한 화가 김준근의 그림 '엿 파는 아이'에서 가위를 든 소년 엿장수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19세기 말에는 엿가위를 썼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암(1499~?)의 귀여운 강아지 그림에서 애완견의 역사를 살펴보다가 '누렁이 삶는 법' '개장 고는 법' 등 
조선시대 사람들의 개고기 조리법까지 넘어간다. 중종 때 권신(權臣) 김안로는 개고기 마니아였으며, 그에게 개고기를 
올려 벼슬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엄숙한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시대 사람들이 은밀하게 즐긴 '춘화(春畵)'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단원과 혜원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춘화는 남녀의 운우지락(雲雨之樂)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각각의 주제마다 그림과 관련된 19세기 말~20세기 초 사진 자료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