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06.28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마우스로 인한 사고 패턴 변화, '멀티 태스킹'이 특징
어릴 때부터 컴퓨터 익숙해 산만해 보이는 젊은 세대
매체 따라 사고 구조도 달라져… 소통 부재의 원인
이전 세대는 좀더 '세련'되게 생각할 필요 있어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사실 너무 많이 건너뛴 이야기다.
인간 의식의 변화를 설명하는 강력한 이론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내 '쥐' 이야기로 돌아가서 설명해보자.
인간 사유의 본질은 '날아다니기'다. 멍하니 있을 때, 생각은 날아다닌다.
컴퓨터의 마우스는 'A4적 사고'의 틀을 통째로 뒤집어 버렸다. ('터치'는 마우스에 피부를 입힌 것으로 봐야 한다.)
- /김정운 그림
'쥐적 사고'의 더욱 결정적인 특징은 '멀티 태스킹'이다. 클릭할 때마다 텍스트를 뛰어넘어, 전혀 다른 매체로 이동한다.
메일을 체크하면서 뉴스도 보고, 음악도 듣는다. 중간중간, 날아드는 트위터에 일일이 답도 한다.
이제까지 정신병리학적 장애로 여겨졌던 주의 산만, 집중력 장애가 일반적 사고 패턴이 되어 버린 것이다.
'A4적 사고'는 '책이 놓여있는 책상'이라는 전제에서 기능한다. 그러나 '쥐적 사고'는 책상이 필요 없다.
책상이 동시에 세 개도 되고 네 개도 된다.
실제 컴퓨터 운영체제 개발자들은 바로 이 '책상'이라는 메타포로 야기되는 상상력의 빈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아예 '데스크(책상)'라는 용어 자체를 없애려고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윈도를 사용했던 30대 후반까지가 '쥐적 사고'를 한다고 볼 수 있다.
'A4적 사고'를 하는 그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존재다.
도구 차이가 아니다. 매체가 다르면 사유 내용이 달라지고, 결국 존재 양식마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쥐적 사고'를 참을 수 없이 가볍다고 비난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너희는 왜 그렇게 생겼느냐고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에 젤 치사한 게 생긴 것 가지고 뭐라 하는 거다.
한국 사회의 소통 부재는 'A4적 사고'와 '쥐적 사고'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정치적 포지셔닝은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 같은 'A4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갈등의 외피를 입고 있는, 도무지 교환할 수 없는 사유 방식의 차이, 존재 양식의 갈등은 거의 문명 충돌에 가깝다.
이렇게 교묘하게 은폐된 갈등은 '쥐적 사고'가 대세가 될 때까지 계속된다.
물론 시간은 그들의 편이다.
아, 그렇다고 'A4적 사고'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건 아니다. 비데 나왔다고 휴지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휴지는 더 고급이 되어야 한다. 어설프게 싸구려 휴지를 썼다간 너저분하게 낀다.
특히 요즘 같은 여름에는 예민한 그곳의 살갗이 까지기까지 한다.
비데와 휴지의 모순 관계에서 휴지가 살아남는 길은 고급이 되는 길뿐이다.
이젠 제발 좀 세련된 'A4적 사고'를 하자는 이야기다.
'人文,社會科學 > 人文,社會'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정운의 敢言異說, 아니면 말고] 더 자도 된다! 朝刊(아침신문)은 좀 더 있어야 온다! (0) | 2015.01.21 |
---|---|
[김정운의 敢言異說, 아니면 말고] 밤에 거울 보고 가위바위보 했다 (0) | 2015.01.19 |
[김정운의 敢言異說, 아니면 말고] 禁止를 금지하라! (0) | 2015.01.17 |
<책> "제주도의 神,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귀양 온 존재들" (0) | 2015.01.05 |
[인문의 향연] 우물 안 개구리(井底之蛙·정저지와)를 위한 변명 (0) | 2015.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