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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향연] 우물 안 개구리(井底之蛙·정저지와)를 위한 변명

바람아님 2015. 1. 5. 11:12

(출처-조선일보 2015.01.05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우물서 살며 만족할 순 있어도 成功 포기하고
欲望 억압하는 우리 사회 현실은 큰 문제 있어
바둑판 돌은 모두 의미 지닌 것…
자기 방식으로 完生 추구하며 새해를 멋지게 살길 응원한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사진우리는 헤어질 때도, 그리고 만날 때도 똑같이 '안녕'이라고 인사한다. 

그래서 지난해 유행한 어투로 말하자면,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비슷한 것 같은' 연말과 연시의 

시간을 맞고 있다. 

'그때, 장자를 만났다'(강상구 지음)의 '그때'가 '인생의 전환점'이라면, 

지금이 바로 그때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틀린' 인생은 없고 '다른' 인생만 있으며, 

인생의 정답도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많다고 강조한다. 

그러니 자신만의 삶을 살면 된다는 것이다. 멋있어서 어려운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물 안 개구리'도 색다르게 해석한다. 

흔히 견문이 좁아 세상 형편을 모르는 사람을 일컫지만, 

그런 평가를 낳게 한 동해 자라를 함께 고려하면 달라진다고 말한다. 

그 근거가 등장하는 '장자'의 '추수(秋水)'편(篇)을 보면, 

동해 자라개구리의 우물 안이 궁금해서 들어가 보려 했지만 

짧은 다리 탓에 우물 턱을 넘지 못하자 우물 밖에서 자신의 광활한 바다에서의 삶을 자랑한다. 

이 부분에 의하면 개구리는 오히려 자라로 인해 우물 밖에 바다 세상이 존재함을 알게 된 반면, 

자라는 여전히 우물 안의 세상은 모른 채 바다만 알 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저자는 도전적으로 질문한다. 

"왜 우물에 살면서 동해의 삶을 동경해야 하는데? 그냥 우물에 사는 행복함을 만끽하면 안 되나?" 

물론 관견(管見)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뜻으로 '정저지와(井底之蛙)'를 읽어야 하지만, 

개구리를 비웃는 자라의 세상이 더 넓다고만 볼 수도 없다. 

자라도 편협하기는 마찬가지라면, 고수(高手)와 하수(下手)의 경계가 헷갈린다. 

작은 것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큰 것이어도 대단히 여기지 말라는 장자의 묘수(妙手)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편협함보다 더 편협한 것이 편협함을 모르는 편협함이기 때문이다.

최근 번역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을 읽으면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를 

세대적 관점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거품 경제의 붕괴와 장기 불황으로 꿈과 희망을 갖기 힘들어진 일본 젊은이들이 

오히려 최고 호황기 때보다 더 높은 행복감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커다란 목표를 가져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때는 

소소한 오늘의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란다. 유니클로 옷을 입고 이케아 가구를 살 수 있으면 대만족이다. 

그래서 소유가 아닌 향유를 실천하는 이런 젊은이들을 '사토리(득도) 세대'라고도 부른다.

넓은 세계의 가치만 아는 동해 자라처럼 

일본의 기성세대들은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면서 자신들의 '다른' 삶을 '정답' 중 하나로 삼는 젊은이들이 

자기 보호가 아닌 자기 파괴에 빠져 자발적 선택이 아닌 강요된 만족을 중시한다고 비판한다. 

성공을 원하지 않으니 발전이 없고, 소비하지 않으니 경제가 호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26세 때인 2011년에 이 책을 쓴 저자는 이런 삶이 배부른 투정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적응 방식이라고 강변(强辯)한다.

마치 '잘못 아닌 잘못'으로 인해 오해받아서 억울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아직 한국에서는 일본과 달리 성공의 거부보다는 포기가, 욕망의 초월보다는 억압이 더 문제 된다. 

드라마 '미생(未生)' 속 주인공 장그래처럼 완생(完生)을 꿈꾸는 젊은이가 더 많으니까. 

그들은 완생 자체가 낭만적인 신기루에 불과함을 알아도 추구한다. 

그래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인생의 바둑을 계속 둔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우물 안이든 밖이든,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이란 없다'는 사실이다. 

'분별없음'과 '차별 없음'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어려워서 멋있는 일이다. 

멋있을 수 있는 '열두 달'의 시간이 다시 주어졌다. "장그래,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