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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인문학 서재] 르네 지라르 '희생양',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바람아님 2014. 12. 28. 18:19

[전봉관의 인문학 서재] 위기가 닥치면 군중은 남을 탓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조선일보 2014.12.27 전봉관 KAIST 인문사회학과 교수)


	르네 지라르 '희생양'
르네 지라르 '희생양'

14세기 중반 프랑스 북부 지방에 페스트가 돌았을 때 공포에 휩싸인 군중 사이에 
"유대인들이 강과 샘에 독약을 풀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퍼졌다. 
그 때문에 어느 마을엔 페스트가 번지기도 전에 광분한 군중에 의해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다. 
이 광기 어린 학살을 통해 군중은 이웃과 가족이 페스트로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페스트의 공포를 
어느 정도 덜 수 있었다. 르네 지라르가 쓴 '희생양'(민음사)은 집단적 박해와 희생양이라는 
관점에서 인류 문화를 해석하고 신화와 성서를 분석한 책이다.

집단적 박해는 흔히 문화적 질서를 규정하는 차이와 규칙이 소멸하는 위기 상황에서 등장한다. 
페스트·홍수·지진 같은 대재앙에 직면하면 신분이 높다거나 가난하다거나 하는 차이는 소멸된다. 
이러한 위기에 부닥치면 사람들은 자신을 책망하기보다는 타인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경향이 강하다. 
집단적 박해의 대상으로 지목된 사람들에게는 절대 권력이나 무구한 사람들을 향한 폭력을 행사했다는 범죄, 신성 모독과 
같은 종교적 범죄 혹은 강간·근친상간 등 성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박해의 대상은 일반적으로 민족적·종교적 소수파와 같은 집단에서 선택된다. 
병, 광기, 선천적 기형, 후천적 장애 등 육체적 비정상 탓에 박해자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는 평균적 기준에서 상하 양쪽으로 멀어질수록 박해받을 위험은 더 커진다. 
지나치게 가난하거나 추하고, 혐오스러운 것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부유하거나 아름답고, 호감을 주는 것 역시 
집단의 분노를 자극한다.

	전봉관 KAIST 인문사회학과 교수
부자와 권력자는 평상시에 행사했던 그 영향력 때문에 그들에게 집중되는 폭력이 정당화된다. 
프랑스대혁명 때 처형된 마리 앙투아네트는 절대 권력을 행사한 아름다운 왕비인 데다 오스트리아 
출신 외국인이라는 것 등 희생양으로 지목될 조건을 두루 가지고 있었다. 그런 탓에 재판 과정에서는 
아들과 근친상간을 저질렀다는 상투적 비난에 해당하는 혐의가 추가되었다.

지난 한 해는 국민적 공분(公憤)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유난히 많았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희생양으로 지목해 국민적 공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 역시 
여러 번 있었던 것 같다. 희생양을 향한 비난과 폭력은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수는 없다. 
국가적 재앙이나 파장이 큰 사건일수록 선동에 휘말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실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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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젊은이들 "희망 없어서 행복해요"

(출처-조선일보 2014.12.27 이한수 문화부 기자)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1990년대 이후 어려워진 日경제
비정규직·워킹 푸어 늘었지만 20대 여 75% 남 66% "행복하다"
현재를 즐기는 '사토리 세대' 등장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이언숙 옮김|민음사|386쪽|1만9500원

일하지도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니트(NEET)족', 평생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프리터', 
내향적이고 도전 정신도 없는 '초식남'….

일본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만투성이다. 
"요즘 애들은 문제야"라는 말은 2000년 전에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더 심한 듯하다. 
일본 주요 신문은 2011년 '성년의 날' 사설에서 젊은이들의 행태를 일제히 질타했다.

아사히는 "전철에서 게임만 하고, 휴대전화에 몰두하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면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고 적었다. 
산케이는 "사회는 어차피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포기해버리는 태도는 젊은이답지 못하다"고 썼다. 
요즘 젊은이들은 현상을 타개하려는 도전도, 미래를 위한 분투도 없다는 비판이다.

◇"미래 불안해도 행복하다"

개인 문제만은 아니다.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간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생긴 구조적 현상이란 지적이 나온다. 
1990년대 이후 취업은 어려워지고 비정규직은 늘었다. 
일해도 가난한 '워킹 푸어', 집 없이 PC방을 전전하는 '인터넷카페 난민'도 생겼다. 
극심한 경제 불황 속에서 희망 없는 미래를 사는 젊은이들이 불쌍하다는 시선도 많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격차(格差) 사회'에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게 정상일 텐데 정작 일본 젊은이들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2010년 일본 내각부 조사에서 20대 남성 65.9%, 20대 여성 75.2%가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고도성장기였던 1960년대 후반 20대 젊은이의 생활 만족도는 60%, 1970년대에는 50% 수준이었다. 
NHK 조사에서 '행복하다'는 응답 비율은 1973년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일본‘성년의 날’(1월 둘째 월요일) 행사에 나온 젊은이들.
일본‘성년의 날’(1월 둘째 월요일) 행사에 나온 젊은이들. 
경제 불황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기에 역설적으로 
현재에 만족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토픽이미지
미래를 낙관해서가 아니다. 20대 63.1%는 '미래에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자국 사회에 대한 만족도는 43.9%에 불과했다. 미국 67.6%, 영국 61.2% 등 다른 선진국에 비교하면 일본 젊은이들은 불만이 컸다.

또래들과 비슷… 상대적 박탈감 없어

미래를 불안해하면서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모순을 대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도쿄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젊은 사회학도인 저자 후루이치 노리토시(古市憲壽·29)는 
역설적으로 '희망이 없기에 행복하다'고 진단한다. 
인간이란 미래에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됐을 때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고도성장기나 거품경제 시기 젊은이들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리라고 믿었다. 
당시 젊은이들은 장시간 노동과 힘든 경쟁으로 불행하다고 느끼면서도 언젠가 행복해질 것이란 희망으로 버텼다.

지금 젊은이들은 미래가 더 나아지리라고 믿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빈곤에서 오는 절망이 아니다. 일본 경제는 어느 시대보다 풍요롭고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 
더 이상 경제성장을 못 하더라도 다채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중저가 브랜드 '유니클로'나 '자라'에서 옷을 사고 맥도널드에서 런치세트와 커피로 식사한다. 
'스카이프'로 친구와 채팅을 즐기고 밤에는 친구 집에 모여 식사를 하며 반주를 즐긴다. 
굳이 큰 집이나 멋진 자동차를 갖고 싶지 않다. 
또래 친구들도 갖지 못했기에 상대적 박탈감이 없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또래 정규직 못지않은 돈벌이도 할 수 있다.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들처럼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된다. 
이런 젊은이들을 일컬어 '사토리(득도) 세대'라는 말도 나왔다.

한국 젊은이의 미래는?

미래의 희망을 품지 않기에 행복하다는 진단은 암울하다. 
그러나 젊은 저자는 기성세대의 걱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학 졸업하고 한 기업에서 일하면서 오로지 출세를 위한 경쟁에만 몰두해 온, 
취미라고는 골프나 마작 정도밖에 모르는 아버지들"이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국가 인식도 더 건강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젊은이들 98%가 '일본에서 태어나 다행'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과거 같은 내셔널리즘과는 다르다. 
'전쟁이 나면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는 응답 비율은 15~29세 젊은이 중 7.7%에 불과했다. 
저자는 "아시아·태평양 전쟁은 일본에서만 310만명 희생자를 발생시킨 대규모 살인 사건이었다
이런 젊은이들이 늘어난다면 국제적인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감소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은 한국이 겪는 현상을 미리 경험하는 사회다. 
책 속 이야기는 남의 나라 얘기 같지 않다. 
'일본'을 '한국'으로 바꿔놓아도 어색하지 않다. 
논쟁적인 '젊은이론(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