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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향연] 不在의 묵직한 존재감 그린 영화 두 편

바람아님 2014. 12. 15. 09:07

(출처-조선일보 2014.12.15 황희연 영화 칼럼니스트)

황희연 영화 칼럼니스트 사진'님아…', 老부부의 76년 사랑… 남편 여읜 할머니의 슬픔 채워
'목숨', 호스피스 환자들의 웃음… 인생 아름답게 마무리하게 해
죽음은 세상에 자취 남기는 것… '삶은 죽음 향한 순례' 새겨야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영화 한 편이 의외의 흥행을 기록 중이다. 

얼굴 한가득 세월의 나이테를 새긴 98세 할아버지와 89세 할머니밖에 도무지 볼 것이 없는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현재 약 10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은 이 영화는 언덕배기에 쭈그리고 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한 할머니의 뒷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그녀는 평생을 함께했던 동반자를 막 여의고 

목 놓아 울음을 터트리는 중이다.

카메라는 그녀의 모습을 스크린 한쪽 구석에 조그맣게 놓아둔다. 

마치 둥지를 잃어버린 어린 새 같다. 반면 남편의 부재(不在)는 화면 가득 채워진다. 

화면은 곧 얼마 전의 시간으로 리와인드된다. 

남편이 부재하기 전, 그들이 함께 살았던 일상의 순간 속으로. 같이 산 시간만 76년. 

그 시간을 한결같이 곁에 머물렀던 두 사람은 노년의 부부답지 않게 살가운 애정을 자주 드러낸다. 

낙엽을 쓸다 말고 낙엽 던지기 놀이를 하거나 서로 귀에 꽃을 꽂아주며 웃는 모습이 신혼부부 같다. 

그 시간을 엿보고 난 다음 다시 마주하게 된 이별은 전과 같은 느낌이 아니다. 

부재는 묵직한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호스피스 병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 '목숨'도 

개봉 6일 만에 2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조용한 흥행을 기록 중이다. 

공간의 특성상 '목숨'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도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이 영화는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의 슬픔이 아니라 

살아왔던 지난날의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관점에서 죽음을 재해석한다. 

몇 년 전 장모님을 문병하러 호스피스 병동을 찾았던 40대 가장 박수명씨는 

"내가 환자복을 입고 다시 이곳에 오게 될 줄 몰랐다"며 조용히 웃는다. 

평생 집 한 채를 장만하기 위해 헌신했는데 아파트에 입주한 지 한 달 만에 

암이 발병해 호스피스 병동을 찾은 김정자씨는 

"아침에 다시 태양을 바라보는 것이 진심으로 싫다"고 고백한다. 

이만하면 잘 살았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는 뜻이다.

죽음을 앞둔 이들의 모습은 의외로 소박한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과 함께하며 삶에 대한 질문이 늘어난 신학도 스테파노만이 죽음 앞에서 의연하지 못하다. 

이창재 감독은 스테파노가 "내가 보고 생각하는 것을 대변해주는 친구"라고 말한다. 

이들은 죽음이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죽음 앞에서 늘 갈등하고 번민한다.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생각하면 으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다. 

부와 명예를 등지고 평생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니어링 부부는 노년에 이르러 매일 밤 이런 글귀를 함께 읽었다고 한다. 

"삶은 죽음을 향한 순례다. 탄생의 순간부터 죽음은 당신을 향한 출발을 시작했다. 

삶은 다만 죽음을 향한 순례이므로 죽음은 삶보다 더 신비로운 것이다." 

헬렌 니어링은 남편이 죽은 후에도 10년간 농장을 지키며 홀로 죽음을 향한 순례의 발걸음을 또박또박 걸어갔다. 

단풍나무 시럽을 조금씩 삼키고 주스와 물, 약간의 곡기(穀氣)를 씹으며 충만하게 죽음을 마중 나갔다.

죽음 혹은 부재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니어링 부부처럼 부재를 충만한 또 하나의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살다 갔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존재를 새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비록 거창한 무엇은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새겨진 자취는 0이라는 숫자처럼 부재의 존재감을 남긴다. 

부재는 진짜 없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지나간 흔적이다. 

인간은 무수한 흔적을 새기며 끝내 0으로 돌아가는 존재다. 

그 부재의 존재감을 인식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