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1408

[삶과문화]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세계일보 2022. 10. 21. 22:57 엄마는 매번 긴 편지를 보내왔다 치매가 걸린 뒤에는 받지 못했다 손편지를 쓸 일이 거의 없는 세상 오늘 엄마께 긴 편지를 써야겠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 한 구절을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 그래서 이 편지는 /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김남조의 ‘편지’ 부분) 이 시를 읽으면 편지를 쓰는 순간의 간절함이 잘 느껴진다. 부치지 않아도 쓰는 이의 마음이 미리 당도하는 것이 사랑이다. 어머니의 편지는 각별했다. 사무용 괘지를 일곱 장이나 이어 붙여서 세로로 써 내려간 편지였다. 두툼한 봉투를 뜯으면 한참 동안 펼쳐지는 긴 편지를 거실 바닥에 풀어내면서 읽었다. 이 긴 편지가 어떻게 봉투에 다 들어갔을까 싶게 차곡차곡 접어 넣은 편지는 꼭 익일 특..

요절한 남편 평생 사랑, 이중섭의 아내[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동아일보 2022-10-07 03:04 “모친께서는 멋진 인생을 사셨습니다. 아프시지도 않고 평온하게 가셨어요.” 올 8월 13일, 화가 이중섭(1916∼1956)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1921∼2022) 여사가 향년 101세(한국 나이 102세)로 별세했다. 그의 둘째 아들 야스나리(泰成) 씨는 나에게 전화로 이처럼 그녀의 인생과 가시는 모습을 전했다.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국민화가 이중섭의 그림에는 힘찬 소, 은박지나 엽서에 꽃게와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그리고 사랑하는 부부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 그림 속의 여인이 바로 아내 마사코다. 이중섭은 그녀를 ‘이남덕(李南德)’이란 한국식 이름으로 부르며 무척 사랑했다. https://v.daum.net/v/2022100703042885..

<살며 생각하며>사색의 즐거움

문화일보 2022. 9. 30. 12:00 (이태동 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 사색은 신이 인간에게 준 능력 상상력과 함께 근원적 에너지 과학자들의 발견이나 발명도 모두 사색에서 출발해 나온 것 사색의 즐거움을 모른다면 인생의 중요한 부분도 잃어 인간은 왜 사색하는 존재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신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왜 신은 인간을 사색하는 존재로 만들었을까. 성서적(聖書的)인 해석에 따르면,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금지된 지식의 나무 열매를 따 먹고 타락하는 것을 보고 신이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면서도 연민을 느껴 인간에게 베푼 은혜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은 죄에 대한 형벌로 노역(勞役)하도록 만들었지만, 사색을 통해 ‘잃어버린..

[백영옥의 말과 글] [270]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

조선일보 2022. 9. 24. 00:00 가끔 TV 프로그램에서 쓰레기로 가득 찬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거나, 쌓아놓은 물건이 너무 많아 누울 공간 하나 없이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런 사연은 극심한 악취와 오물 때문에 오래 고통받아 온 이웃의 제보로 알려진다. ‘저장 강박증’이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대개 마음의 불안에서 온다. 저장 강박의 시작은 ‘언젠가는 필요하겠지’라는 마음이다. 스스로도 물건이 많다는 걸 알지만 필요할 때 없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에 물건을 정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마음은 종종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으로 변형된다.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을 잃어버릴까 봐 더 모으는 것이다. 이런 시간이 축적되면 물건의 필요 여부는 더 이상 중요치 않고, 물건을 모으기만 하고,..

[조은산의 시선] '쓴다'와 '산다'는 같은 일이더라

조선일보 2022. 9. 22. 03:03 글과 삶은 닮아 있다. 진실한 글은 한 사람의 영혼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을 쓴다는 건 한 삶을 산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한 적 없는 나는 글을 모르고, 나이 갓 마흔을 넘긴 나는 아직 삶도 모른다. 그러나 쓰는 고통과 사는 아픔을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은 그러한 경험적 사실에서 비롯된 글과 삶에 관한 내 생각의 기록이다. 살아 있는 누구나 글을 쓴다. 내 아들도 글을 쓴다. 올해 여덟 살 난 아들의 코 묻은 일기장에도 삶은 피어있다. 직장인은 보고서를 쓰며 구직자는 이력서를 쓴다. 글은 살아 있다는 인식의 증서요, 기어이 살겠다는 열망의 필사다. https://v.daum.net/v/20220922030327509 [조..

[노트북을 열며] 여자의 가슴은 죄가 없다

중앙일보 2022.09.15. 00:53 지난해 캐나다에 사는 한국 교포가 자신의 딸과 손주라며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길거리에서 한쪽 가슴을 드러낸 채 수유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인파가 붐비는 곳도, 그렇다고 외진 곳도 아닌 카페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당하게 수유를 하고 있었다. 배경에 찍힌 행인들도 이상야릇한 시선을 보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 같은 이 장면을 한국사회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다. 지난 한 해 1년간 모유 수유를 하면서 직접 마주한 현실이다. 모유만 고집하는, 심지어 젖병도 거부하는 아이와 외출할 때 수유가리개는 필수였다. ‘젖먹던 힘까지’란 말이 있을 정도로 아이는 온 힘을 다 쓰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데 한여름에도 보자기 같은 이 물건을 뒤집어쓰고 있는 건..

<포럼>'좌편향 교과서' 전면 시정 급하다

문화일보 2022.09.07. 11:27 교육 분야에서는 문재인 정권 인사들에 의한 대한민국 허물기로 자유민주공화국을 정상 복원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 표명이 무색해지고 있다. 장관이 공석인 교육부는 교과별 교육과정 시안을 발표했다. 그중 역사·도덕·보건 등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역사나 도덕은 좌편향 이념으로, 보건은 양성평등이 아닌 성평등이 문제다. 특히, 고교 ‘한국사’ 교육과정은 개항 후 근현대사 150년에 84%를 할애해 5000년 유구한 역사를 압살했다고 비판받는다. 북한이 역사에서 봉건제 조선까지를 홀대하는 것과 흡사하다. 통상 1945년을 기점으로 나누던 근현대사를 1937년 중일전쟁(김일성의 보천보전투)을 기점으로 구분한 것도 의구심을 낳는다. 이런 해괴한 교육과정을 책임 집필..

[백영옥의 말과 글][268] 어떤 선택

조선일보 2022.09.03. 00:00 TV에서 4박 5일 동안 12명의 남녀가 한곳에 모여서 자신의 짝을 찾는 프로그램을 봤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해 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사람과 상대에게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 마음을 감추는 사람, 핑퐁처럼 마음이 옮겨 다니는 사람 등 미묘한 감정의 변화들이 가득했다. 그러다가 “싫어질 때까지 좋아하는 게 내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여성의 말이 들렸다. 상대 남성이 거절하는 건 그의 마음이니 존중하겠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내 마음’이니 끝까지 미련을 남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https://v.daum.net/v/20220903000024726 [백영옥의 말과 글][268] 어떤 선택 [백영옥의 말과 글][268] 어떤 선택 TV에서 4박 5일 동안 12명의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