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1408

[백영옥의 말과 글] [282] 일을 잘한다는 것

조선일보 2022. 12. 17. 00:00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이 ‘일주일에 8일’이라는 곡을 쓴 건 우연이었다. 매카트니는 그즈음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레넌과 작업하기 위해서 운전사의 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가야 했다. 그때 매카트니가 운전사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건넨 말이 꽉 막혀 있던 창작의 한 줄기 뮤즈가 되었다. “아! 죽어라 일만 했죠. 일주일에 8일씩요!” 일주일에 8일! 달리는 차 안에서 명곡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궁금한 건 비틀스가 아니라 그 운전사다. 일주일에 8일을 일한 그는 어떻게 됐을까? ‘프로 일잘러’였던 선배들이 오십 전후를 넘기며 뇌졸중, 암, 마비라는 이름으로 무릎이 꺾일 때마다, 나는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경력은 살아남은..

[백영옥의 말과 글] [279] 너무 애쓰지 마라

조선일보 2022. 11. 26. 00:00 첫째니까 무조건 잘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동생들이 보고 배운단 뜻이었다. 노력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야 한다는 부모님의 간절한 소망은 우리도 너를 위해 있는 힘껏 노력하고 있으니 더 분발하라는 징표였다. 그 사랑과 관심에 벅차 눈물이 날 때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키웠다는 그 말의 무게에 짓눌려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죽어라 노력하고 애써도 안 되는 게 많다는 걸 배운 상처투성이의 성장기였다. https://v.daum.net/v/20221126000023304 [백영옥의 말과 글] [279] 너무 애쓰지 마라 [백영옥의 말과 글] [279] 너무 애쓰지 마라 첫째니까 무조건 잘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

[자작나무 숲] 동물에 관한 이야기는 왜 슬픈 걸까

조선일보 2022. 11. 22. 03:02 말을 잔혹하게 죽이는 ‘죄와 벌’, 애견을 강에 빠뜨리는 ‘무무’ 러 문학엔 동물 관련 슬픈 이야기 많아… 인간 고통이 반영된 것 동물이 인간을 믿고 의지하는 존재일 때, 이야기는 더욱 슬퍼져 ‘아침이면 동물들은 당신을 찾으러 온다. 그들은 그렇게 그들의 애정을 드러내 보인다. 그들의 하루는 사랑과 신뢰의 행위로 시작된다.’ 자신의 죽은 개를 그리며 쓴 장 그르니에 산문집 한 대목이다. 똘이도 아침이면 나를 찾아온다. 현관 쪽에서 자다가 인기척이 나면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가 잔다. 간혹 내가 이른 새벽 가만히 일어나 책상 앞에 앉을 때면,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마음 놓고 그냥 푹 잔다. 그때는 내가 똘이를 찾아간다. 동물이 인간을 믿고..

[백영옥의 말과 글] [278] 가을이 되면

조선일보 2022. 11. 19. 00:00 가을이 되면 가을이 제일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봄이 오면 봄이 가장 좋다고, 여름이 오면 여름을 최고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줏대 없다고 볼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겨울이면 눈이 내려서, 여름이면 좋아하는 복숭아를 실컷 먹을 수 있어서 기쁜 사람이고 싶다. 김연수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그가 메리 올리버의 시를 얘기하며 “세상은 경이로워!”라고 말하는 것과 “세상을 품에 안을 때 경이로워!”라는 말이 다르다고 말하는 문장을 발견했다. “’세상을 품에 안을 때 경이롭다’는 말은 경이로움이 내게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세상을 안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셈이다. https://v.da..

[백영옥의 말과 글] [276] 앉은 자리가 꽃자리

조선일보 2022. 11. 5. 00:00 3주간 기차로 이동하는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자주 역방향으로 달려가는 좌석에 앉게 되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햇빛이 비치는 창가 자리를 배정받을 때였는데 여름 햇빛은 참 고역이었다.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풍경을 감상하려던 계획은 틀어졌고, 이번 여행은 운 없이 늘 햇빛 쪽 창가에만 앉는다고 생각했다. 커튼을 치자 이내 기분도 어두워졌다. 그러다 며칠 후, 기차가 늘 직선으로만 달리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기차는 직선과 곡선 때로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했다. 햇빛이 내리꽂던 창가는 어느새 그늘이 되었고, 반대편 창가는 햇빛이 번졌다. 문득 우리 삶도 달리는 기차의 여정과 비슷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https://v.daum.net/v/2022110..

남편 그늘 벗고… ‘온전한 나’로 일어선 女화가들

동아일보 2022. 11. 3. 03:03 하인두 작가의 부인 류민자 안상철 화백의 부인 나희균 이건용 화백 부인 승연례 등 잇단 개인전 열며 작가의 삶 “그의 아내가 아닌/나의 이름으로 서 있는 이곳/아직 낯설어/그의 그림이 아닌/나의 그림으로 채워진 이곳/그건 더 새로워….” 올해 9월 처음 선보인 창작뮤지컬 ‘라흐 헤스트’는 여성 화가이자 미술평론가인 김향안(1916∼2004)의 삶을 재조명한 작품. 시인 이상(1910∼1937)과 화가 김환기(1913∼1974)라는 두 천재 거장의 부인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김향안 역시 자기만의 세계를 공고히 구축한 예술가였다. ‘라흐 헤스트’는 “예술은 남다”라는 프랑스말로,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는다”라는 김향안의 어록에서 따왔다. https://v.daum..

고려 궁녀 외로움 달랜 귀뚜라미, 노인 인지력 향상 도움

중앙일보 2022. 10. 27. 14:20 “귀뚜라미를 키우는 게 생각보다 재밌고, 소리도 듣기 좋아. 오늘 복지관에 갔더니 다들 모여서 귀뚜라미 얘기를 해. 귀뚜라미가 다 죽었다고 빈 통 가져온 사람도 있더라. 우리 집 귀뚜라미는 잘 크고 있는데 말이야. 그래서 난 잘하고 있다고 자랑했더니 부러워하더라고.” 왕귀뚜라미 돌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73세 할머니가 관찰일지에 적은 글이다. 가을밤 정적을 가르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아련한 추억에 잠겨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대표적인 곤충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서 옛 추억을 회상할 수 있게 만든다. 실제로 고려 시대의 문인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 ‘가을이 돌아오면 궁중의 여인들은 작은 금롱 안에 귀뚜라..

[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웃기는 아들

조선일보 2022. 10. 25. 03:04 연극하는 아들 걱정하는 부모님께 "언젠가 웃게 해드릴 것" 다짐 임종 못한 아버지 빈소서 정장 마련 못해 꽉 끼는 옷 빌려 입고 사십구재선 실수로 남의 큰 옷 입어.. 눈물 짓던 어머니도 빵 터져 내가 연극을 하고 있다고 고백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많이 당황했다. 나는 원래 사람과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부끄럼을 타는 성격이었다. 그런 내가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주로 코미디를 연기한다니. ‘누군가한테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애가, 어떻게 누군가를 웃길 수 있지?’ 나를 말없이 바라보는 두 분의 눈빛은 대략 이런 뉘앙스였다. https://v.daum.net/v/20221025030457010 [오세혁의 극적인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