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정선과 이병연의 '콜라보' 경향신문 2017.11.14. 21:10 “자네와 나는 합쳐야…되는데 그림 날고 시 떨어지니 둘다 허둥대네.…강서에 지는 저 노을 원망스럽네.” 1740년 사천 이병연(1671~1751)이 양천현감으로 떠나는 겸재 정선(1676~1759)에게 보낸 이별시다. 지금으로 치면 멀지도 않은 양천구청장으로 떠나는 친구에게 ‘..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7.11.15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겸재 정선의 '졸작열전' 경향신문 2017.08.01. 20:50 ‘겸재는…조선중화사상에 따라…조선고유색을 현양한 진경문화를 주도한…진경산수화법의 창시자다.’ 겸재 정선(1676~1759)을 향한 극찬이다. 심지어 ‘민족적 자존심을 지킨 화성(畵聖)으로 추앙해야 할 인물’로도 꼽힌다. 무오류의 위인전을 읽는 듯하다. 그러..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7.08.02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사람 제사의 비밀 경향신문 2017.05.23. 20:51 “서울의 왕자·옹주가 새집을 지으면서 어린아이를 생매장한다는 소문이 돕니다.” 조선조 성종의 치세(1493~1494년)에 해괴망측한 유언비어가 퍼졌다. 땅의 기운을 다스리려고 아이들을 납치해서 생매장한다는 것이었다. 소름 끼치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경.. 生活文化/그때그일그사람 2017.05.24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완용은 왜 독립문 글씨를 썼을까 경향신문 2017.02.28 16:30 “교북동 큰 길가에 독립문이 있습니다. 모양으로만 보면 불란서 파리에 있는 개선문과 비슷합니다. 이 문은 독립협회가 일어났을 때 서재필이란 이가 주창하여 세우게 된 것이랍니다. 그 위에 새겨있는 ‘독립문’이란 세 글자는 이완용이가 쓴 것이랍니다. 이완.. 生活文化/그때그일그사람 2017.03.01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백제 구구단 목간 경향신문 2017.01.17 21:24 ‘九〃八一 八九七□□ 七九六十三….’ 2011년 6월 사비 백제의 도읍지인 부여 쌍북리 주택 신축공사장에서 숫자가 새겨진 목간 1점(사진)이 수습됐다. 처음엔 문서나 물건 등을 보내면서 단 물품 꼬리표인 줄 알았다. 5년 뒤인 2016년 1월16일 한국목간학회가 주최한 .. 生活文化/그때그일그사람 2017.01.17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기러기 아빠' 다산의 꾸지람 경향신문 2016.09.27. 20:40 2004년 어느 날 경기 수원의 아파트 공사장에 수레에 폐지를 한가득 실은 할머니가 나타났다. 현장소장의 눈이 빛났다. 할머니의 수레에 있던 헌책 3권이 눈에 밟힌 것이다. “할머니, 그 헌책 좀 줄 수 있어요?” 그렇게 책 3권을 입수한 현장소장은 2년 뒤 KBS의 <TV.. 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2016.09.27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황금보검의 소유자는 금수저가 아니었다. 경향신문 2016.09.14. 10:14 1973년 경주는 관광개발사업이 한창이었다. 5월부터 미추왕릉 지구(현 대릉원) 정화사업에 따라 옛 시청 앞에서 계림에 이르는 도로공사가 벌어졌다. 막 시멘트 배수관을 설치하려고 도로의 양쪽을 깊이 파내자 엄청난 무덤들이 노출됐다. 새롭게 확인된 무덤은 55.. 生活文化/그때그일그사람 2016.09.17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선죽교의 핏자국 경향신문 2016.03.01. 21:11 “선죽교 낭자한 핏자국을 보고(善竹橋頭血)…충신이 나라의 위기를 맞아(忠臣當國危) 죽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겠는가(不死更何爲).” 1947년 백범 김구 선생은 개성 선죽교를 탐방하고 비분강개했다. 18세기 실학자인 이덕무(1741~1793) 역시 가슴 찡한 시를 남긴다. .. 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2016.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