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3.12 공혜진 일러스트 작가)
- 공혜진
- 일러스트 작가
우리는 동사무소 주차장 부근 후미진 곳에서 만난다.
만나면 별다른 말없이 서로 얼마큼 자랐는지 확인하듯 눈인사를 나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햇빛이 비치면 비치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고스란히 맞으며
같이 하늘을 올려다보곤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오는 길이면 아쉬워 친구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온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오는 길이면 아쉬워 친구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온다.
친구의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함께 보낸 지난 시간이 보인다.
어쩌면 성장하는 친구의 모습 속에서 나의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바람이 불거나 해가 비쳐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의 친구는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잘 보이지
비바람이 불거나 해가 비쳐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의 친구는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들풀이다. 게다가 아스팔트 틈이나 바닥의 블록 사이 틈에서 자라는 친구는 한 명이 아니다.
주변에 내가 처음 만났던 친구의 자손들과 그들의 친구들도 있다.
누군가에게 밟히거나 뽑혀도, 눈이 잎들을 모두 덮어버리는 계절이 와도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오롯이 겪어내고 있는
틈 사이의 동네 식물 친구들.
봄에 살아가기 더 좋은 조건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잎을 떨구지 않고 잎을 단 채로 혹독한 겨울을 나는 식물을
봄에 살아가기 더 좋은 조건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잎을 떨구지 않고 잎을 단 채로 혹독한 겨울을 나는 식물을
로제트 식물이라 한다. 내 친구가 그런 근성의 로제트 식물 중 하나다.
아스팔트 틈에서 쌀알만 한 꽃을 피우는 작은 틈꽃들에게 그런 사연이 있다는 걸 동네 친구 '꽃마리' 덕분에 알게 됐다.
이제 겨우내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그들이 깨어나는 계절이 왔다. 어제 만난 친구에게서 변신의 징후를 발견했다.
몇 주 전 찍은 사진과 나란히 놓고 보니 겨우내 죽은 듯 마르고 색이 빠져 있던 작은 잎들에 푸른색이 돌기 시작했다.
곧 잎들은 제 색을 찾을 테고 작지만 꽃도 열매도 틔울 테다.
이제 더 자주 카메라를 들고 낮게 바닥에 엎드려 겨울을 견뎌낸 작은 친구들을 응원할 것이다.
<각주 : 로제트 식물, 로제트형(rosette形)>관련 글 보기
<멋 없는 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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