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4.11
공재 윤두서 작 ‘자화상’, 종이에 엷은 색, 38.5X20.5㎝, 18세기 초, 국보 제 240호, 녹우당 소장 [중앙포토]
문 교수는 공재의 ‘자화상’을 책상 앞에 걸어두고 오랫동안 명상해왔다고 썼다. “일체의 수식과 미화를 배제한” 채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만이 형형한 얼굴이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이미지가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하다. 꽉 다문 입이 보는 이에게 전하는 말을 문 교수는 이렇게 읽었다. “나는 세계를 응시한다. 나의 미진(未盡)을 추스르면서 삶의 불운, 세상의 불의와 대결한다. 나는 탐구하며 나아갈 것이다. ”
한국회화사에서 이 그림은 현재까지 전해지는 18세기 이전의 유일한 자화상으로 평가받는다. 측면 구도에 의관을 잘 갖춰 입은 모습의 조선시대 초상화와 너무도 다른 파격의 형식으로 학계의 연구대상이다. 왜 머리통만 달랑 그려넣었을까, 라는 의문으로부터 채색과 음영이 서양기법을 연상시킨다는 지적까지 지난 수십 년 간 문제작으로 꼽혀왔다. 공재 서거 300주년을 기려 국립광주박물관이 주최한 특별전 ‘공재 윤두서’(2014년 10월 21일~2015년 1월 18일) 또한 학술심포지엄을 함께 열어 이런 쟁점들을 중심으로 논쟁했다.
미술사학자들이 도상과 화법 파헤치기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 문광훈 교수는 공재의 내면으로 뚫고 들어갔다. 300년의 세월을 격해 두 인간이, 두 인격이 만났다. 아마도 이런 마음의 연결이 이른바 명작(名作)이라 일컬어지는 예술혼을 가늠하는 잣대이리라. “이질적인 것 사이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종류의 만남과 교차, 이 교차가 갖는 효과는 무엇일까? 나는 이 교차의 상호작용에 어떤 ‘변형적 계기’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고 문 교수는 적었다. 그것은 개심(改心)의 체험과 유사하다.
문 교수는 공재의 자화상에서 두 개의 사자성어를 끌어낸다. ‘정구연핵’과 ‘염정자수’다. 정밀하게 궁구하여 사물의 뜻을 밝히고, 고요한 가운데 자기를 지키는 일이다. 선비로서 공재가 견지한 학문원칙과 생활원칙인 셈이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살피면서 자신과 대화하고, 자신을 점점 더 알아가고, 자신을 사유하는 것이야말로 목숨 받은 자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공재의 자화상은 ‘선한 일은 너 자신을 위해 하라’고 침묵으로 웅변한다. 시공을 뛰어넘은 그림 한 점이 우리에게 와 감각을 일깨워 새롭게 하는 놀라운 힘.
정재숙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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