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6.15 김태익 논설위원)
미국 의회도서관에는 존 트라볼타가 주연한 '토요일 밤의 열기'와 톰 행크스 주연 '포레스트 검프' 같은 영화들이 보존돼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찰리 채플린의 첫 장편 '키드', 존 포드 감독의 서부극 '철마' 같은 것들도 있다.
미 의회도서관은 장서가 1억4200만점, 소장 자료 언어가 470종인 세계 최고 도서관이다.
제임스 빌링턴 관장 취임 후인 1989년부터는 영화도 수집해왔다.
해마다 2000여편의 미국 영화 중 25편을 골랐으니 이제 650편가량 된다.
▶영화들은 예술적으로 빼어나거나 흥행에 성공해서 선택된 게 아니다.
'각 시대 미국 문화의 특성을 후세에 전할 수 있는 것'이 빌링턴 관장이 제시한 선정 기준이다.
같은 취지에서 미 의회도서관은 해마다 대중음악가도 선정해 '거쉰상(賞)'을 수여한다.
음악가 조지 거쉰 형제를 기리는 상이다. 올해는 가수 빌리 조엘이 받았다.
또 미국의 사회·문화적 전통을 대변하는 시인을 '올해의 계관(桂冠) 시인'으로 뽑는다.
올해 시인은 멕시코 이주 노동자 아들 후안 펠리페 에레라였다.
▶이 같은 활동의 바탕에는 '도서관은 미국 문화의 수호자'라는 빌링턴 관장의 철학이 깔려 있다.
빌링턴 관장은 하버드대와 프린스턴대 교수를 지낸 러시아사 전공 석학(碩學)이다.
1987년 쉰여덟 살 때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의회도서관장에 임명됐다.
명망 있는 학자가 도서관장을 맡는 것은 서양의 오랜 지적(知的) 전통이다.
▶지금은 누구나 주머니에 도서관을 하나씩 가지고 다니는 시대다. 스마트폰에 담긴 정보의 양이 그렇다.
빌링턴 관장은 취임하자마자 역사 자료 2400만건을 디지털화해 온라인에 공개했다.
이 사업은 나중에 국가 디지털도서관 설립으로 발전했고 여러 나라 도서관들이 자료를 디지털화(化)하는 모델이 됐다.
1990년대 초에는 미 의회도서관이 갖고 있는 한국학 관련 문헌 목록화 작업을 지휘하기도 했다.
▶올해 여든여섯인 빌링턴 관장이 28년 만에 물러난다고 한다.
대통령이 몇 번 바뀌고 공화당·민주당 정권 교체가 몇 차례 있었는데도 한 사람을 4반세기 넘게 장관급 도서관장에 있게
하는 게 미국 사회다. 미 의회도서관은 1800년 개관 이후 13명의 지식인이 평균 16년씩 관장을 맡아 왔다.
우리 국립 중앙도서관장은 공무원이 맡고 있다. 평균 재임 기간이 1.8년이다.
한 나라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을 가고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을 가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은 다시 능력 있는 의회도서관장을 찾아내 새로운 지식의 시대를 열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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