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9.11.30)
[문화ㅣ주경철의 세계사 새로 보기] ③ 비버
명품 모피의 주인 비버, 북아메리카 역사를 바꿨다
- :: 비버가 ‘친구’로 여겼던 인디언의 변심
그렇다면 인디언들은 비버를 어떻게 이용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떤 이유로 비버를 잡아다가 유럽인들에게 넘겼을까?
인디언들 역시 모피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주로 고기를 얻기 위해 비버를 사냥했으며, 또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들이 - 유럽인들과 접촉하고 난 후 새로운 유럽 상품들을 얻기 위해 모피를 대량으로 넘겨주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 그러나 그 이면에는 훨씬 복잡한 사정이 있다. 인디언들에게 비버는 단순히 고기나 모피를 제공하는 사냥물 이상의
- 존재였다.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디언과 동물들 간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알아야 한다.
- ▲ 중세 비버 사냥을 묘사한 그림.
- 오지브와족 같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동물은 인간의 친구이며, 숲에 들어가서 동물을 사냥한다는 것은
-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 친구들의 몸을 빌려오는 성스러운 행위였다.
- 인디언 창세 신화를 보면 모든 동물들은 원래 ‘사람’이었다.
- 태초에 동물과 사람은 서로 말이 통하는 존재로서, 상호 방문하고 함께 춤추면서 놀고 담배도 나누어 피며,
- 심지어는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아이도 낳을 수 있는 관계였다. 그 후 사람 세계와 동물 세계가 분리되어서 곰, 비버,
- 여우, 사슴 같은 모든 동물들은 각각 자신의 나라를 이루고 살게 되었다. 각 동물의 나라에는 그들의 ‘왕(keeper)’이
- 군림하고 있는데 이 왕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엄청나게 큰 몸집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존재이다.
사람 사회는 이런 수많은 동물 나라들 중 하나에 불과하며 따라서 사람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한 존재는 아니다. - 어떻게 보면 독수리처럼 날 수도 없고 비버처럼 물속에 집을 지을 수도 없는 사람이 오히려 다른 동물에 비해
- 약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만물을 주재하는 ‘위대한 영혼’은 사람들이 다른 동물의 육체를 ‘선물 받아’
- 그것으로 살아가도록 허락해 주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비버를 사냥해서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비버 왕이 자기 휘하의 몇몇 비버들에게 명령하여 사람들에게 잡히도록 했기
- 때문이다. 영특한 비버는 원하면 결코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고 피할 수 있지만 친구인 사람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기
- 생명을 내준 것이다.
:: 죽음 부른 전염병은 동물의 저주?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주는 동물 친구들을 정중하게 대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인디언들이 사냥하고 음식을 조리할 - 때에는 수많은 터부들이 있어서 이를 엄격하게 지켰다. 사냥 동물을 잔인하게 고문하거나 사체를 마구 훼손해서는
- 안 된다. 음식은 모든 사람이 보는 곳에서 정성을 다해 조리하고 한번에 남김 없이 먹어야 한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물들의 뼈를 조심스럽게 맞추어 장사를 잘 지내줘야 한다. 이를 잘 지키면 동물의 영혼이 저승에
- 갔다가 다시 생명을 얻어 이 땅에 돌아오게 된다. 그러면 원래 자신의 뼈에 살이 붙어서 다시 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 그러므로 사냥 당한 동물들의 ‘그림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를 어떻게 다루는지 잘 지켜보고 있다. 모든 생명은 무릇
-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나니 몸과 영혼 그리고 그림자가 그것이다. 그림자는 영혼의 눈과 같은 것으로서 자기 몸에서
- 빠져나와 다른 존재의 그림자와 교감할 수 있다. 만일 인디언들이 사냥한 동물의 몸을 함부로 대하면 그림자가 이것을
- 보고 있다가 곧 자기 나라로 가서 왕에게 일러바친다. 그러면 분노한 왕은 앞으로 두 번 다시 그 부족 사람들에게 사냥
- 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곳을 떠나버린다.
이런 아름다운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던 인디언들에게 유럽인과의 만남은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무엇보다도 인디언들은 유럽산 물건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수의 모피를 유럽인들에게 건네주었다.
- 18세기 말에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에서 수입한 비버 모피는 연평균 26만마리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물건이 탐이 난다고 해도 그토록 존중해 마지않던 친구들을
- 마구 죽여서 이방인들에게 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인디언들이 그렇게 많은 모피를 전해준 것은 단순히 유럽인들이
- 가지고 온 물건에 눈이 멀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인디언 사회에 들어가서 이들을 관찰하고 자세한 보고서를
- 작성한 가톨릭 신부들의 기록을 보면 엄청난 규모로 전염병이 돌아서 인디언 사회가 총체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 유럽인들이 들여온 새로운 질병은 수많은 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천연두 한 가지 병만으로 아메리카에서 죽은
- 사람 수가 2000만명이나 된다는 연구도 있다. 난생 처음 보는 괴질이 도는데 이를 고치기 위해 무당이 아무리 애를
- 써도 소용이 없었다. 어떤 맥락인지는 모르겠으나 인디언들은 이런 가공할 재앙이 동물들의 저주 때문이라고 본 것 같다.
- 그리하여 인디언들은 지금까지 친구 관계였던 동물들에 대해 일종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사냥을 했다고
- 일부 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 18세기 모피 유행 사라지면서 비버 명맥 유지
비버 사냥의 이면에는 이처럼 전지구적인 차원의 일들이 얽혀 있었다. 파리와 런던의 모피 의상의 유행으로부터 - 당시 발전하기 시작한 대서양 무역, 북아메리카의 식민지 확대, 전염병의 확산, 그리고 인디언들의 세계관의 변화에
-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현상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비버는 한때 세계를 움직이게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은 서식 환경의 악화와 남획으로 멸종 위기에 몰렸다. - 비버는 사람들이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동물인 데다가 번식률이 낮아서 사냥꾼이 어떤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사냥을 하면
- 그 지역에서 통째로 사라지곤 했다. 결국 비버의 멸종 위험을 깨달은 유럽 상인들이 이 귀중한 자원을 잘 관리하며
- 이용하자는 방식의 보호정책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비버가 멸종을 피할 수 있었던 요인은 사실 다른 데에 있었다.
- 18세기 중반경에 모피 유행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이제 모피 옷은 너무 무겁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구식 의상으로
- 취급되었다. 대신 실크햇을 써야 멋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덕분에 비버는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고, 20세기부터는
- 자연보호 정책 덕분에 개체 수도 늘었다. 오늘날 비버들은 자기 조상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보존지역의
- 물속에서 유유히 놀고 있다.
- ▲ 비버 / 수달
- 비버
하천이나 늪지대에 사는 비버과 동물의 총칭으로 바다삵이라고도 부른다. - 수중생활을 하며 앞니로 나무 등을 갉아 넘어뜨려 댐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달
족제비과 포유류의 일종으로 물갈퀴가 달려있는 것이 특징이다. - 수중생활에 알맞게 적응해 물고기를 주로 먹는다.
-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330호로 지정된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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