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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ㅣ주경철의 세계사 새로 보기] ③-2 비버

바람아님 2015. 6. 30. 18:10

(출처-조선일보 2009.11.30)


[문화ㅣ주경철의 세계사 새로 보기] ③ 비버

명품 모피의 주인 비버, 북아메리카 역사를 바꿨다



:: 비버가 ‘친구’로 여겼던 인디언의 변심

그렇다면 인디언들은 비버를 어떻게 이용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떤 이유로 비버를 잡아다가 유럽인들에게 넘겼을까?

인디언들 역시 모피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주로 고기를 얻기 위해 비버를 사냥했으며, 또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들이 
유럽인들과 접촉하고 난 후 새로운 유럽 상품들을 얻기 위해 모피를 대량으로 넘겨주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훨씬 복잡한 사정이 있다. 인디언들에게 비버는 단순히 고기나 모피를 제공하는 사냥물 이상의 
존재였다.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디언과 동물들 간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알아야 한다.

▲ 중세 비버 사냥을 묘사한 그림.
오지브와족 같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동물은 인간의 친구이며, 숲에 들어가서 동물을 사냥한다는 것은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 친구들의 몸을 빌려오는 성스러운 행위였다. 
인디언 창세 신화를 보면 모든 동물들은 원래 ‘사람’이었다. 
태초에 동물과 사람은 서로 말이 통하는 존재로서, 상호 방문하고 함께 춤추면서 놀고 담배도 나누어 피며, 
심지어는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아이도 낳을 수 있는 관계였다. 그 후 사람 세계와 동물 세계가 분리되어서 곰, 비버, 
여우, 사슴 같은 모든 동물들은 각각 자신의 나라를 이루고 살게 되었다. 각 동물의 나라에는 그들의 ‘왕(keeper)’이 
군림하고 있는데 이 왕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엄청나게 큰 몸집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존재이다.

사람 사회는 이런 수많은 동물 나라들 중 하나에 불과하며 따라서 사람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한 존재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독수리처럼 날 수도 없고 비버처럼 물속에 집을 지을 수도 없는 사람이 오히려 다른 동물에 비해 
약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만물을 주재하는 ‘위대한 영혼’은 사람들이 다른 동물의 육체를 ‘선물 받아’ 
그것으로 살아가도록 허락해 주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비버를 사냥해서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비버 왕이 자기 휘하의 몇몇 비버들에게 명령하여 사람들에게 잡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영특한 비버는 원하면 결코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고 피할 수 있지만 친구인 사람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기 
생명을 내준 것이다. 


:: 죽음 부른 전염병은 동물의 저주?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주는 동물 친구들을 정중하게 대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인디언들이 사냥하고 음식을 조리할 
때에는 수많은 터부들이 있어서 이를 엄격하게 지켰다. 사냥 동물을 잔인하게 고문하거나 사체를 마구 훼손해서는 
안 된다. 음식은 모든 사람이 보는 곳에서 정성을 다해 조리하고 한번에 남김 없이 먹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물들의 뼈를 조심스럽게 맞추어 장사를 잘 지내줘야 한다. 이를 잘 지키면 동물의 영혼이 저승에 
갔다가 다시 생명을 얻어 이 땅에 돌아오게 된다. 그러면 원래 자신의 뼈에 살이 붙어서 다시 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사냥 당한 동물들의 ‘그림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를 어떻게 다루는지 잘 지켜보고 있다. 모든 생명은 무릇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나니 몸과 영혼 그리고 그림자가 그것이다. 그림자는 영혼의 눈과 같은 것으로서 자기 몸에서 
빠져나와 다른 존재의 그림자와 교감할 수 있다. 만일 인디언들이 사냥한 동물의 몸을 함부로 대하면 그림자가 이것을 
보고 있다가 곧 자기 나라로 가서 왕에게 일러바친다. 그러면 분노한 왕은 앞으로 두 번 다시 그 부족 사람들에게 사냥 
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곳을 떠나버린다.

이런 아름다운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던 인디언들에게 유럽인과의 만남은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무엇보다도 인디언들은 유럽산 물건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수의 모피를 유럽인들에게 건네주었다. 
18세기 말에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에서 수입한 비버 모피는 연평균 26만마리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물건이 탐이 난다고 해도 그토록 존중해 마지않던 친구들을 
마구 죽여서 이방인들에게 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인디언들이 그렇게 많은 모피를 전해준 것은 단순히 유럽인들이 
가지고 온 물건에 눈이 멀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인디언 사회에 들어가서 이들을 관찰하고 자세한 보고서를 
작성한 가톨릭 신부들의 기록을 보면 엄청난 규모로 전염병이 돌아서 인디언 사회가 총체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유럽인들이 들여온 새로운 질병은 수많은 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천연두 한 가지 병만으로 아메리카에서 죽은 
사람 수가 2000만명이나 된다는 연구도 있다. 난생 처음 보는 괴질이 도는데 이를 고치기 위해 무당이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어떤 맥락인지는 모르겠으나 인디언들은 이런 가공할 재앙이 동물들의 저주 때문이라고 본 것 같다.
그리하여 인디언들은 지금까지 친구 관계였던 동물들에 대해 일종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사냥을 했다고 
일부 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 18세기 모피 유행 사라지면서 비버 명맥 유지

비버 사냥의 이면에는 이처럼 전지구적인 차원의 일들이 얽혀 있었다. 파리와 런던의 모피 의상의 유행으로부터 
당시 발전하기 시작한 대서양 무역, 북아메리카의 식민지 확대, 전염병의 확산, 그리고 인디언들의 세계관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현상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비버는 한때 세계를 움직이게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은 서식 환경의 악화와 남획으로 멸종 위기에 몰렸다. 
비버는 사람들이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동물인 데다가 번식률이 낮아서 사냥꾼이 어떤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사냥을 하면 
그 지역에서 통째로 사라지곤 했다. 결국 비버의 멸종 위험을 깨달은 유럽 상인들이 이 귀중한 자원을 잘 관리하며 
이용하자는 방식의 보호정책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비버가 멸종을 피할 수 있었던 요인은 사실 다른 데에 있었다. 
18세기 중반경에 모피 유행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이제 모피 옷은 너무 무겁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구식 의상으로 
취급되었다. 대신 실크햇을 써야 멋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덕분에 비버는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고, 20세기부터는 
자연보호 정책 덕분에 개체 수도 늘었다. 오늘날 비버들은 자기 조상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보존지역의 
물속에서 유유히 놀고 있다

▲ 비버 / 수달
비버
하천이나 늪지대에 사는 비버과 동물의 총칭으로 바다삵이라고도 부른다. 
수중생활을 하며 앞니로 나무 등을 갉아 넘어뜨려 댐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달
족제비과 포유류의 일종으로 물갈퀴가 달려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중생활에 알맞게 적응해 물고기를 주로 먹는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330호로 지정된 동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