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7.09 김윤덕 논설위원·문화부 차장)
김황식 전 총리가 재임 시절 여기자협회 임원들을 공관으로 초대했다.
총리는 국정에 관한 여성 언론인 생각을 알고 싶어 했다.
누군가 "기업이 장시간 근무와 야근을 없애야 일 그만두는 여성이 줄고 남자들도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린다"고 했다.
판사 출신 김 총리가 뜻밖의 '고해'를 했다.
"맞아요. 판사들도 낮엔 이 방 저 방 놀러다니며 담배 피우고 잡담하다 퇴근 무렵 되면 그제야 판결문 쓰겠다며 팔을
걷어붙였으니…." 총리의 귀여운 '폭로'에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미국 기업은 밤늦도록 사무실에 남아 일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능하다' 평하기도 한다.
한국계 테마파크 디자이너 니나 안은 워커·커닝햄 같은 유수의 설계 회사에서 맹활약했다.
말단에서 유리천장을 뚫기까지 그녀는 '시간과의 싸움'이 가장 힘겨웠다고 했다.
백인 동료를 뛰어넘으려면 몇 배 노력해야 하는데 회사에 오래 남아 있으면 '실력 없다' 찍히니
집으로 몰래 일감을 싸들고 가야 했다는 거다.
'시간을 다루는 기술'이 곧 능력의 잣대였다.
▶9시 출근, 5시 퇴근 '나인 투 파이브'를 철저히 지키는 북유럽 기업도 시간과 전쟁을 치른다.
퇴근 시각은 오후 5시이지만 3시부터는 자유업무 시간으로 어떤 회의도 열지 않으니 아침부터 바지런히 움직여야
그날 일을 매듭짓는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 샌드위치 들고 일하는 직원이 태반이다. 그래도 행복하다.
가족과의 단란한 저녁 식사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세계에서 가장 바쁜 남자라고 할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알고 보니 '칼퇴근'하는 남자란다.
외국 정상 만찬같이 중요한 약속이 없는 한 오후 6시 30분 퇴근해 가족과 저녁을 먹는다.
오바마는 "내 하루의 하이라이트는 딸들 이야기 들으며 그들이 멋진 숙녀로 커가는 걸 지켜보는 것"이라고 했다.
가족의 존귀함, 휴식의 진가를 아는 이 다정하고 지혜로운 남자를 아줌마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우리 남편들 참 안쓰럽다.
사정이 나아졌다곤 해도 한국은 여전히 가장 오래 일하고 휴가 적게 쓰기로 OECD 1~2등을 다툰다.
삶의 만족도는 물론 기업 생산성이 높을 리 없다. CEO들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IT 기업들은 '일과 가정의 균형(work & life balance)'을 경영 핵심 가치로 삼은 지 오래다.
남자들도 자기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가족과 더불어 저녁 시간 누릴 권리, 육아의 기쁨을 만끽할 권리 말이다.
잘 쉬고 잘 놀 줄 아는 사람이 일도 잘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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