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말의 활약
전쟁의 주역… 칭기즈칸의 승리도 말의 승리
이슬람교의 팽창에서도 말은 핵심 역할을 했다. 이슬람교가 성립되고 난 후 단기간에 유라시아의 광대한 지역과 - 아프리카 북부까지 전파될 수 있었던 데는 이 팽창이 단지 종교적 전도였을 뿐 아니라 동시에 군사적 정복이기도 했기
- 때문이다.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무하마드 자신이 탁월한 기병대 장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 그러니 무하마드가 거느린 말에 관한 전설이 빠질 리가 없다. 어느 날 무하마드는 자신이 거느리는 말들의 충성심을
- 시험해 보고자 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물을 주지 않고 가둬두었다가 마침내 문을 열자 모든 말들이 일제히 급수대로
- 달려갔다. 바로 그 순간, 무하마드가 전투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그 가운데 다섯 마리가 곧바로 달려왔다.
- 이 말들이 무하마드가 애용한 말들이 되었으며, 그 후손들이 아라비아의 왕실 말이 되었다고 한다. 무하마드가
- ‘바람에서 탄생한
존재’라고 일컬은 아랍 말은 오랫동안 아시아와 유럽 각국이 소유하고 싶은 명마의 대명사였다.
- ▲ 쿠샨 왕조 신화에 등장하는 말과 등자를 묘사한 조각.
- (서기 150년경 추정)
-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사제국이라 일컬어지는
-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역시 기병의 승리를 통해
- 이룩한 것이다.
- 몽골 기병들은 한번 말에 타면 며칠 동안 내려오지
- 않을 정도로 말과 한 몸이 되었으니,
- 거의 켄타우로스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 말이 풀이나 건초를 먹는 동안에도 그들은 말에서
- 내리지 않고 안장에서 쉬었다.
- 칭기즈칸의 군대는 식량이 떨어졌을 때 자기가 타고 다니는 말의 혈관에 구멍을 뚫고 피를 빨아먹으며
- 싸운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말이 살신성인의
- 공헌을 한 것은 정복 전쟁 때만이 아니라 제국 건설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 제국 전역에 약 20㎞마다 역참을 두어서 모두
- 1만곳의 역참이 있었는데, 한 곳마다 400마리의
- 말을 보유하되 그중 절반인 200마리는 언제라도
- 사용할 수 있는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몽골은 그야말로 말의 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역사상 전투에서 말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한 사례 중 하나는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정복할 때이다. 콜럼버스 이후 자기
- 원산지로 되돌아온 말들은 가공할 정복자로서 귀향한 셈이다. 말을 처음 본 인디오들에게 그것은 지옥에서 온 괴물처럼
- 보인 모양이다. 잉카제국 점령 당시의 기록을 보면 어이없어 보일 정도로 쉽게 제국이 무너지는데,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 말이 있다. 1532년에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에 도착한 피사로의 군대는 고작 106명의 보병과 62명의 기병으로
- 구성되어 있었다. 이 소규모 부대가 7000명을 살해하고 잉카(황제) 자신을 생포함으로써 8만명의 군인이 지키고 있는
- 제국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때의 전략이라는 것이 고작해야 병사들이 나팔을 불고 말에 딸랑이를 매달아 소리를
- 내면서 기습 공격을 감행한다는 것이었다. 말의 괴력 앞에 인디오들이 혼비백산한 것이 승패를 가른 요인이라고
-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 말의 변신
2차대전부터 탱크·자동차에 밀려 레저용으로
- ▲ 고대 이집트 람세스 2세가 카데시전투에서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장면.
- 이처럼 세계 역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말이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 도대체 말은 언제까지 사람들 간의 무력 충돌에 동원되었을까? 우리가 통상 짐작하는
- 것보다는 훨씬 더 늦은 시기까지 말이 전쟁에서 맹활약했다. 그 정도가 아니라 19세기에서
- 20세기 초반까지가 말 문화의 정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때는 철마(鐵馬·기차)가 등장한
- 시기라고 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수의 살아있는 말이 수송과 전투에서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 1866년에 일어난 보오전쟁(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간의 전쟁) 당시 5만6000명의 기병이
- 창과 칼로 무장하고 총을 든 병사들과 대적한 적이 있었고, 몇 년 뒤 보불전쟁(프로이센과
- 오스트리아 간의 전쟁, 1870~1871)에서도 9만6000명의 기병이 전투에 임하였다.
- 이런 현상은 1차대전까지 지속되어서, 1914년에만 해도 기병대 간의 교전이 상당히 자주
- 일어났고 특히 정찰 활동에 말이 유용하게 이용되었다. 다만 서부전선에서는 참호전이
- 일반화되고 철조망과 기관총이 널리 사용되면서 말은 급격히 전투에서 배제되었다.
그렇지만 참호전이 확립되지 않은 동부전선에서는 여전히 말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당시는 러시아군에 20만명의 - 기병이 있던 때이다. 전선에 직접 투입되지는 않는다고 해도 특히 무기와 보급품의 수송에서는 말이 결정적인 역할을
- 맡고 있었다. 철도는 적의 폭격으로 끊어지지만, 말은 길이 없는 곳까지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1916년에 전투에
- 동원된 말의 수가 120만마리로 추정되는 형편이니, 이때만 하더라도 말 사료가 핵심 군수물자로 취급되었다.
- 말이 전쟁에서 중추적인 위치에서 벗어난 것은 2차대전에 가서의 일이다. 탱크와 자동차가 말의 역할을 거의 완전히
- 대체하게 된 것이다. 이제 비로소
말은 사람들 간의 싸움에서 놓여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단지 의장대나 왕실을 지키는 부대 같은 곳에서만 상징적인 의미를 지닐 뿐 실제적인 군사적 효용은 거의 - 사라졌다고 보아야 한다. 군사 부문만이 아니라 수송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2차대전 직후에도 유럽에서는 당분간
- 말이 운송 수단으로 사용되었지만(1948년 프랑스에는 말 200만마리가 있었다)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곧 자동차로
- 대체되었다. 이제 말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부문에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레저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 그 외에도 말을 이용한 치료(equitherapy)와 같은 새로운 분야도 개발되고 있다. 신체 장애아나 자폐아에게 말 타는
- 법을 가르치면 몸의 균형을 찾고 외부에 마음을 열도록 하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말은 역사의 흐름 내내 남성적·전투적·귀족적인 성격을 띠며 인간과 함께 해 왔지만, 이제는 훨씬 민주화되고 또 여성과 - 아동에게
친화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 주경철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서양사학 석사.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박사(네덜란드사 전공).
- 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문화로 읽는 세계사’ ‘대항해시대’ ‘네덜란드’ ‘문명과 바다’ 등 저서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