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주간조선 2009.11.16 주경철)
- [문화 | 주경철의 세계사 새로 보기] ② 말
- 말의 원래 고향은 아메리카 대륙
1만년 만에 귀환, 원주민 정복 선봉에
- 말이 전속력으로 달릴 때 네 발굽이 동시에 땅에서 떨어지는 때가 있을까?
이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사람들 사이에 많이
회자되던 문제이다. - 맨눈으로 보면 어느 순간 말의 네 다리가 전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통 알 수가 없다.
- 어찌
보면 한가하기 그지없는 문제지만, 궁금증을 풀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사람이 꼭 있게 마련이다.
- 19세기 말 미국의 거부(巨富)이자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역임한 정치가이며, 특히 스탠퍼드 대학 설립자로 유명한
- 릴랜드 스탠퍼드(Leland Stanford)가 그런 사람이었다.
-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2만5000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을 걸고 친구와 내기를 한 그는
- “네 다리가 동시에 떠 있다(unsupported
transit)”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마침 그 시기에 등장한 사진기를
- 이용하기로 하고,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에게 말이 달리는 모습을
찍도록 했다(1877~1878). 당시의 유리 원판 사진기는
- 촬영 준비를 한 후 한 번밖에 찍지 못하는지라 마이브리지는 24대의 카메라를
동원해서 연속 촬영을 했다.
- 결과는…. 말의 네 다리가 동시에 땅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확실히 찍혀서 스탠퍼드의 주장이 맞는 것으로 밝혀졌다.
- 참고로 마이브리지의 촬영은 정지된 사진으로부터 ‘활동사진’으로 발전하는 단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 영화 교과서에 자주 거론되곤
한다.
- ▲ photo 조선일보 DB
- 19세기에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말 사진을 찍은
- 이 일화는 장구한 역사의 흐름에 주목하는 역사가의
- 관점에서는 새삼 흥미로운 데가 있다.
- 원래 말의 고향은 다름 아닌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 말이 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퍼져가게 된 것은 지금부터
- 약 1만3000~4000년 전에 지구의
기온 하강으로
- 해수면이 크게 내려가서 현재의 베링해협이 뭍으로
- 드러남으로써 시베리아와 북아메리카가 연결되었을
- 때의 일이다. 지질학자들이
베링기아(Beringia)라
- 부르는 이 땅은 남북 간 폭이 약 800㎞에 이르는 거대한
- 교량 역할을 했다. 이곳을 통해 아시아와 아메리카
- 사이에
많은 생물종들이 교환되었다.
- 무엇보다도 시베리아로부터 인간이 이 교량을 넘어
- 아메리카로 가서 오늘날 ‘인디언’이라 부르는 아메리카
- 선주민이 된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 반대편으로는 여러 동물들이 넘어갔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말이다.
- 고향을 떠난 말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에까지 널리 퍼져갔지만, 정작 자기 고향인 아메리카에서는 멸종당했다.
- (그 이유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세히 알지 못 한다.)
- 아메리카에 다시
말이 나타난 것은 콜럼버스가 이곳에 도착한 이후의 일이다.
- 그는 1494년에 24마리의 수말과 10마리의 암말을 들여왔는데, 이 말들은
에스파뇰라 섬에서 크게 번성했다.
- 베링기아를 건너갔던 말은 아시아 초원지대에서 살다가 아랍 지역에 들어갔고, 그후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던
- 스페인에 아랍 말이 전해졌다가, 다시 스페인인에 의해 아메리카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 그후 19세기가 되면 서부영화에서 보듯이 미국 서부
지역에까지 유럽산 말과 소가 넘쳐나게 되었다.
- 마이브리지의 말 사진은 1만년 만의 극적인 귀향을 축하하는 기념사진처럼
보인다.
:: 말의
진화
5000만년 전 60㎝ 길이의 에오히푸스가 진화
거듭
말은 5000만년 전에 존재했던 약 60㎝ 길이의 에오히푸스(Eohippus)로부터 오늘날의
에쿠우스(equus)에 이르기까지 - 진화를 거듭해 오는 동안 초원 위를 빨리 달리는 성질을 계속 강화해 갔다. 발가락이 사라지고 대신 발굽이
생겨났으며,
- 다리는 더 길어졌다. 그래야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이 커지고, 귀는 모든 방향으로 돌 수
- 있으며, 코가
발달한 것 역시 위험을 빨리 인식하고 빠른 속도로 달아나기 위해서다. 말은 평지에서 최고 시속 60㎞로
- 달릴 수 있고, 하루에 160㎞까지 달릴
수 있다. 이 겁 많고 잘 놀라는 동물은 잠자는 방식도 아주 특이해서,
- 낮에 10~15분씩 짧은 잠을 여러 번 자는데 이것을 전부 합쳐도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자지 않으며
- (이에 비해 사자 같은 포식동물들은 하루에 16시간까지 잔다), 또 눕지 않고 선 채로 잔다.
- 다만 며칠에 한 번
누워서 1~2시간 정도 깊은 잠을 자는데, 이때에는 반드시 무리 중에 일부가 보초를 서서 위험을
- 예방한다. 게다가 야생 상태에서는 아무리 느린
정도라도 계속 움직이는 버릇이 있다.
- 육식동물의 먹이로 태어난 까닭에 말은 그야말로 끊임없는 움직임의 `화신이 되었다.
-
- ▲ 미국인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1877~1878년 24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연속촬영한
- 말이 달리는 모습.
이 사진으로 당시 많은 미국인들이 궁금해 하던 ‘말의 네 발굽이
- 동시에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풀렸다.
- 인간과 말이 언제부터 만났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에 가장 많이 그려진 동물 중 하나가 말이라는 점을 보면 사람들은
일찍부터 말을 영험한 동물로
- 본 것 같다. 그러나 말의 가축화는 다른 동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다.
- 개보다는 6000년, 소보다는
3000년 늦은 시기인 기원전 4000년경에 우크라이나 남쪽의 드니에프르 강 유역에서 말이
- 사람 손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이때에는 다른
용도보다는 잡아먹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 오랫동안 말고기는
- 쇠고기만큼이나 맛있고 값진 식량이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식용(食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갈수록 줄어서,
- 프랑스의 통계를 보면 1년에 약 2만7000마리 정도만 스테이크 재료로서 생을 마칠 뿐 대부분의 말들은 30세를 넘겨
- 말
양로원에서 늙어 죽는다고 한다.
:: 말과 인간의
만남
6000년 전 식용으로 길들여진 후 수송·농사에 이용
사람과 말이 포식자와 먹잇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첫 가축화 이후 1000~2000년이 더 지난
후의 - 일이다. 이제는 잡아먹기보다는 말의 힘을 이용해서 수송, 농사, 전투 등의 다양한 용도로 말을 부리게 되었으니
- 일종의 재가축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말의 힘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이는 정말로 힘들고 복잡한 문제이다. 동물의 강력한 근육 힘을
사람이 바라는 여러 방식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 여러 종류의 마구(馬具)들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등장한 마구로는 재갈이 있다. 기원전
2000년경에 등장한 재갈은
- 서서히 사방으로 퍼져가서 기원전 800년경이면 유럽과 시베리아에까지 보급되었다.
- 그리고 이것이 길마, 안장, 가슴
띠, 멍에, 목줄, 뱃대끈 등 여러 마구들의 발명과 보급을 자극했다.
- 이것들이 각각 어디에서 처음 나와서 어디로 전해졌으며 또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는 기술사(技術史)의 중요
- 토픽들이다.
- 그 가운데 특히 많은 주목을 받은 고전적인 사례로는 등자(`?子·stirrup)를 들 수
있다. 등자는 안장 위에 앉은 사람에게
- 안정성을 주고, 그래서 피로를 줄여주며 다양한 승마 스타일을 가능케 한다. 등자가 없는 상태에서 말을
타면 몸이
- 불안정하여 아주 힘든 상태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고대 아시리아인들은 등자가 개발되기 이전에 말을 탔는데,
- 이들은 고삐를 잡아당기거나
양다리로 힘을 가하면서 말이 달리는 방향을 조정하고, 또 그런 상태에서 활을 쏘았으니
- 정말로 대단한 기마 실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등자는
아마도 기원전 500년경에 인도에서 ‘발가락 등자(toe stirrup·
- 고리 모양의 로프로 엄지발가락을 넣게 되어 있다)’ 형태로 처음 개발된
것으로 보인다.
- 이것이 중국으로 전해지고 이곳에서 다시 아시아를 관통하여 유럽에 전해져서 800년경 샤를마뉴 시절에 유럽에서도
-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등자의 도입이 유럽에 봉건주의를 확립시킨 요인이라고까지 주장한다.
:: 말과 권력
전투에 사용되면서 무력의 핵심으로… 국가·귀족이
독점
말은 농사에도 널리 쓰였지만 그보다는 전투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는 데에서 더 큰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여러 문명권에서 말은 무력의 핵심 요소였다. 고대와 중세에 말은 오늘날의 탱크와 전투기에 해당한다.
- 빠른 스피드와 높이의 이점을 가진
기병이 활을 쏘거나 창을 휘두르며 보병을 덮치면 압도적 우위를 누렸다.
- 이 때문에 말은 무력을 장악한 사회 엘리트, 즉 전사 귀족을 특징짓는
요소가 되었다. 국가나 귀족만이 말의 이용을
- 독점하고 말의 번식, 수출입, 조련 등을 엄격히 통제하는 것은 유럽, 중국, 중앙아시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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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의 명마 부케팔루스.
- 강력한 기마민족이 이웃 지역을 공격하고 점령하는 일은 유라시아의 역사에서 거듭 반복되는 스토리이다.
- 인류문명의 초기인 수메르 시대에 말이
전투에 사용된 이래 고대 제국의 역사에서 말과 마차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 요소가 되었다.
- 기원전 18세기에 힉소스가 기마 전차를 앞세워
이집트를 공격해 들어갈 때의 기록을 보면
- “전차가 마치 화살처럼 날아오고 말발굽은 천둥소리를 낸다”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계 제패를 목표로 아시아의 광대한 영토를 정복해 들어갔을 때에도 기마대가 전면에 서 있었다.
- 알렉산드로스는 부케팔루스(‘소대가리를 한
말’이라는 뜻)라는 명마를 타고 친위 기마대를 지휘하며 전장을 누비고
- 다녔다. 인도에까지 이르는 동안 단 한번도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는 이
영웅의 신화적인 일대기에서 말 이야기는
- 빠지는 법이 없다.
[문화 | 주경철의 세계사 새로 보기] ② 말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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