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사진기자 김성룡의 사각사각] 가을 하늘에 풍덩 빠지다

바람아님 2015. 9. 19. 00:19
중앙일보 2015-9-18

코가 간질간질, 콧물이 줄줄.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가 나옵니다. 계절의 변화는 늘 코끝에서 먼저 느낍니다. 그놈의 비염 덕분입니다. ‘문자 발신처’(국민안전처)에서 시도 때도 없이 폭염 긴급재난문자를 날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붑니다. 잘 때면 서로 걷어차던 이불을 이젠 서로 덮겠다고 잡아당깁니다. 그렇게 요란하게 울어대던 매미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그 자리를 귀뚜라미 울음이 채우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가을입니다.

사진은 경기도 용인의 한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언뜻 보면 나란히 늘어선 장승처럼 보이기도 하고, 칠레 이스터 섬의 거대 석상 같기도 합니다. 실은 놀이기구에 탑승해 거꾸로 뒤집혀 버린 사람들의 다리와 발입니다. 아래서 올려다본 이들의 모습은 푸른 하늘에 발을 담근 것처럼 편안해 보였습니다. 저 위에 올라가면 가을 하늘에 풍덩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까? 약간의 기대를 하며 놀이기구에 올랐습니다.


웬걸! 안전 바가 내려오고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하늘은 발 아래로 꺼지고, 땅은 머리 위로 솟구쳤습니다. 눈앞이 하얘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 높은 곳에는 가을의 낭만은커녕 중력의 힘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