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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따뜻하나 밤 되면 차가워져
무서리 내려오고 얼음도 얼어오니
어느 새 상강이구나 겨울 채비 하여라
북녘의 산정에서 시작된 단풍 물결
서서히 산 아래로 남으로 내려오니
화려한 오색 향연이 펼쳐지는 한반도
나뭇잎 시들어서 낙엽이 되었다가
바람에 정처 없이 날리다 사라지니
사람들 우수에 젖어 눈시울을 적시네
가을의 마지막 절기는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다. 상강 절기의 마지막 날이 가을의 마지막 날인 가을 절분이다. 이 시기는 낮에는 맑고 상쾌한 날씨가 계속되나 밤에는 기운이 뚝 떨어지면서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는데 이것이 늦가을에 처음 오는 묽은 서리라고 해서 무서리로 불린다. “겨울은 남하(南下) 중이었고 / 그녀는 간 곳이 없었다 / 오랜 상심(傷心)의 끝자락에선 / 밤새 첫서리가 내렸고 / 단풍은 서럽도록 붉었다”[양승준, <상강(霜降)>]. 무서리와 함께 상강 절기 중에 첫얼음이 어는 경우가 많다.
상강 무렵은 한반도에서 최고의 단풍철이다. 한로 전후로 북녘의 산정에서부터 시작한 나뭇잎들의 아름다운 오색단장이 이 무렵에는 산 아래까지 내려오고 점점 남하하여 상강 절기 중에 남부지방에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반도는 말 그대로 천자만홍(千紫萬紅)의 울긋불긋한 단풍 천지가 된다. “개마고원에 단풍 물들면 / 노고단에서도 함께 물든다 / 분계선 철조망 / 녹슬거나 말거나 / 삼천리강산에 가을 물든다”[류근삼, <단풍>]. 한반도 단풍의 마지막 절정은 상강 절기의 끝 부분인 11월 초의 화려한 내장산 단풍이라고 할 수 있다. <농가월령가>는 이 무렵의 모습을 “만산풍엽은 연지로 물들이고 / 울밑에 황국화는 추광을 자랑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상강 절기의 단풍의 화려함을 두고 만당(晩唐)의 시인 두목(杜牧)은 “서리 맞은 나뭇잎이 이월의 꽃보다 붉구나(霜葉紅於二月花)”라고 읊었다.
우리 속담의 “서리를 기다리는 늦가을 초목”이라는 말처럼, 이때부터 겨울 맞을 준비를 위해 나무들은 서리 맞아 시든 잎사귀들을 땅에 떨구고, 동면(冬眠)하는 벌레들은 모두 땅 속으로 숨는다. 이 무렵에 대부분의 초목의 잎은 변색하여 화려함을 뽐내기도 하지만 이내 시들어 져버린다. 그래서 당장 보기에는 좋아도 얼마 가지 않아 흉하게 됨을 이르는 “구시월의 세단풍(細丹楓)”이라는 속담이 생겼으리라. 나뭇잎은 이제 조락하여 낙엽으로 땅에 쌓이거나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면서 사람들을 우수에 젖게 한다. 바람에 우수수 지거나 이리저리 날리다 사라지는 낙엽에서 사람들은 이별, 상실, 소멸, 죽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낙엽이 자아내는 우수야말로 가장 가을다운 정조일 것이다. 그래서 늦가을은 “낙엽들이 창가로 밀려오네, 붉고 노란 가을 잎들이”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고엽(枯葉, 영어명은 Autumn Leaves, 불어명은 Les Feuilles Mortes)>이라는 우수어린 노래가, 특히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르는 미국의 흑인 가수 냇 킹 콜(Nat King Cole)의 영어 노래나 프랑스의 가수 이브 몽땅(Yves Montand)의 낭송이 있는 샹송이 심금을 울리는 계절이다.
늦가을에 우수 어린 정경을 가장 특징적으로 연출하는 것은 갈대와 억새일 것이다. 늦가을 텅 빈 들녘이나 물가에서 긴 줄기 끝에 갈색 솜털로 뒤덮인 갈대의 꽃 이삭과 보푸라기로 하얗게 된 억새의 꽃 이삭이 하늘로 곧게 뻗쳐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까닭모를 가을 특유의 비애감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상강(霜降). / 서릿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 / 꽃은 꽃끼리, 잎은 잎끼리 / 맨땅에 /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 / 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 / 시대를 통곡한다.”[오세영, <11월> 중에서]. 그러나 그림, 영상, 가요 등의 대중적인 작품의 가을의 상징으로는 갈대보다는 억새가 더 많이 등장하고 더 잘 어울린다. 우중충한 갈색 꽃을 달고 낮은 습지에서 자라는 갈대보다는 흰색 꽃의 억새가 더 청초하게 보이는데다가 물이 없는 언덕이나 산에서 무리지어 많이 자라는 까닭에 눈에 더 잘 띄고 더 처량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장미꽃은 11월까지 피어 있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보통의 꽃들은 서리에 약해서 상강 무렵 무서리가 내리면 거의 모두 져버린다. 그러나 추국(秋菊) 즉 가을국화는 9월부터 11월까지 피는데, 다른 꽃들이 지는 상강 이후의 서릿발 속에서도 피어나기 때문에 가을국화를 일러 서리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라는 뜻의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는 말로 부르기도 한다. 조선 후기의 문신 이정보의 시조에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 다 지내고 /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나니 /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라고 읊은 것이 있다. 이런 추국의 정취도 상강 무렵이 절정이라서 전북 익산 그리고 전남의 영암과 함평 등의 국화축제도 대체로 상강 절기에 열린다.
이때가 마늘을 심고 양파 모종을 이식하는 적기이기도 하다. 또, 아직껏 하지 못한 경우, 조와 수수를 수확하고, 고구마를 캐고, 콩을 타작하고, 호박, 밤, 감을 따고, 서리 맞기 전에 고추와 깻잎도 따야 하는 등으로 무척 바쁜 때다. 과거 이모작 시절에는 이 시기에 벼를 베어 타작하고, 벼를 베어낸 논에는 다시 가을보리를 파종한다. “한로 상강에 겉보리 간다”는 속담이 생겼을 만큼, 이때는 가을보리 파종의 적기다. 보리파종이 늦어지면 동해(凍害)를 입을 염려도 있고, 이듬해 보리 숙기(熟期: 여무는 때)가 늦어져 보리 베기가 지연되고, 보리 베기가 지연되면 모내기가 늦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기 때문에 실기하지 않아야 한다.
과거에는 상강 어간도 바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정신적, 시간적 여유와 함께 수확에 의한 물질적 여유까지 생기게 되어 바쁜 와중에도 같이 일을 했던 이웃들과 심지어는 길손까지 청해서 나누고 즐기고 소도 푸짐히 먹였다. 그래서 <농가월령가> 9월령의 다음 구절은 한로 절기에도 해당하지만 상강 어간에 더 적절해 보인다. “한가을 흔한 적에 과객도 청하나니 / 한 동네 이웃하여 한 들에 농사하니 / 수고도 나눠하고 없는 것도 서로 도와 / 이때를 만났으니 즐기기도 같이 하세 / 아무리 다사하나 농우를 보살펴라 / 핏대에 살을 찌워 제 공을 갚을지라.” 우리 조상들의 마음 씀씀이가 이러했다.
그러나 상강 끝 무렵이면 가을걷이와 가을보리 파종을 끝으로 봄부터 바빴던 한 해의 농사일이 대체로 마무리되고 상강이 지나면 다음해 농사에 대비하는 잔손질만이 남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과거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은 가을걷이에 농기계를 많이 활용하고 농사 기술도 훨씬 발달하여 모든 일들이 더 빨리 마무리된다. 그래서 오늘날 농촌은 일반적으로 상강 어간부터 긴 농한기를 맞게 된다.
이효성성균관대 언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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