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약통을 뒤져 통풍 발작에 먹는 약을 찾아봤다. 마지막 발작이 일어난 지도 오래돼서 약이 남아 있을 리 없다. 급한 대로 진통제를 주워먹고 입맛도 없어 아침식사를 뜨는 둥 마는 둥 출근을 서둘렀다. 차를 세워둔 곳까지 한 걸음씩 절름거리며 걸을 때마다 통증 때문에 저절로 이를 꽉 물게 된다. 운전할 때도 페달을 밟을 때마다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겨우 차를 세우고 걸어서 2분 거리인 병원까지 악전고투하며 가는데 안면 있는 분들의 인사가 이어진다. "원장님, 다리 다치셨어요?" "네, 어제 운동하다가 부딪혔네요." 명색이 내과 전문의인데 통풍 발작이 왔다고 하기 부끄러워서 대충 둘러댔다. 병원에 들어서니 직원들의 같은 인사가 이어진다. 같은 대답을 한 뒤 내 앞으로 처방전을 써서 약을 지어오게 했다. 처방전을 본 약사에게까지는 아픈 이유를 숨길 수 없겠구나 생각하니 조금 한심해졌다.
처음 발작이 일어났을 때 무릎이 붓고 통증이 오기에 정형외과 선배의 병원에 갔었다. 그 선배는 내 무릎에 찬 윤활액을 주사기로 뽑아내며 "내과의사가 통풍 걸린 줄도 모른다"며 타박을 했다. 내 건강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기에 고분고분 받아들였었다. 그러면서도 통풍이란 내가 잘못해서라기보다 저절로 생기는 건데 아무리 의사인들 어찌 알았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은 별 근거 없이 의사들은 아프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의사들 역시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오히려 자기 건강에 소홀한 경우도 많다. 수술 도중 환자 혈액에 감염되어 B형 만성 간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과로에 시달려 유명을 달리한 선배도 있었다. 나보다 내과 1년 선배들은 8명이었는데 전공의 수련 도중 2명이나 결핵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백혈병에 걸려 일찍 떠난 동기도 있고 현재 위암을 앓고 있는 친구도 있다. 지난번 메르스 사태 때 의사를 포함한 의료진들의 감염이 많았던 것을 보면 의료진은 오히려 질병의 최전선에 노출되어 있다.
어찌 보면 의사가 병을 앓아봐야 그 병에 대해 더욱 정통하게 될 수도 있다. 자기의 병이니 같은 병을 가진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기도 쉽고 그 병에 대해 공부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나도 통풍에 걸린 후 통풍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고 약도 잘 먹었지만 발작은 막지 못했다. 만성질병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날 간신히 통증을 참아가며 진료를 마친 뒤 만난 친구들은 절름거리는 나에게 "내과의사가 무슨 통풍이냐" "오랜만에 만났는데 술을 한 잔도 안 마시느냐"고 타박했다. 나는 속으로 구시렁댔다. 의사도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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