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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다큐]도심 한 귀퉁이 지키는 '100년 가업'

바람아님 2015. 12. 13. 00:19
경향신문 2015-12-11

세월의 흔적 밴 투박한 손과 빛바랜 사진천경일 할아버지가 굳은살 박인 손으로 일제 때 찍은 아버지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어둑해지는 서울 종로거리에 간판 등이 하나 둘 켜지면 천경일 할아버지(73)는 하루 영업을 마감한다. 수리 중이던 자전거 몇 대와 연장 두어 개를 정리하고 작은 철문을 닫는다. 건물 사이 좁은 가게에 어울리는 단출한 마감이다.


이곳은 종로구 낙원동, 서울 도심에서 100년째 가업을 잇고 있는 만성자전거방이다. 천 할아버지가 태어나기 전부터 부친이 운영하던 자전거방이다. 아버지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운 천 할아버지는 중학교 때부터 전업으로 자전거 수리와 판매를 도왔다. 7남매 중 장남인 천 할아버지는 이 자전거방을 운영해 동생들을 전부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7남매 공부시킨 자리, 음식점에 내줬지만…지난 2000년 딱 두달 동안 문을 닫았다가 ‘자전거방이 없어 너무 불편하니 다시 열어달라’는 주민들의 요청으로 떼었던 간판을 다시 달았다.







 

 

천 할아버지의 부친은 18세 때(1935년) 삼촌 가게를 인수했다. 1915년에 처음 문을 연 ‘중앙에나메르’라는 자전거방이었는데 부친이 가게 이름을 ‘만성자전거’로 바꿨다. 삼촌 때부터 따지면 만성자전거의 가업 역사는 올해로 100년이다. 가게는 보신각 건너편 옛 화신백화점 앞에 있었다. 1915년부터 45년간 그곳에서 영업하다 1961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좁은 공간에서 자전거 부품을 만지고 있는 천경일 할아버지.

만성자전거방이 문을 닫은 건 딱 두 번이다. 1·4후퇴 때 가족이 모두 부산으로 피란 갔다 돌아오기까지 2년, 그리고 지난 2000년 하도 힘들어 두달간 가게를 접었다. 사연은 이렇다. 부친이 돌아가신 뒤 함께 일할 사람을 구하는데 쉽지 않았다. 혼자 운영하기가 벅찬 천 할아버지는 가게 규모를 조금씩 줄여나갔다. 한 세기 동안 쌓인 도구와 자전거 부품을 정리하는 데 5년이 걸렸다. 천 할아버지는 가게 자리를 세 주고 아예 만성자전거 간판을 내렸다. 두 달쯤 지나자 동네 사람들이 찾아왔다. “자전거방이 없어서 너무 불편하다”며 가게를 다시 열어달라고 간청했다. 천 할아버지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작은 철문을 하나 달고 떼놓았던 간판을 그 위에 올렸다. 그게 지금의 만성자전거다.


 천경일씨의 할아버지 때부터 100년을 이어온 가업. 추억과 역사가 담긴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다.

굳은살 박인 손으로 빛바랜 부친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천 할아버지가 말했다. “요즘은 하루에 두 세명이 찾아와. 그마저 없으면 그냥 놀고. 짐 싣는 자전거가 많이 줄었어. 자전거방이 돈벌이가 안되니 배우려는 사람도 없어. 내 나이 벌써 80을 바라보고 있는데 몇년이나 더 할 수 있을지…, 평생 이 일만 하고 살았는데 간판을 완전히 내리면 많이 아쉽긴 할 거야. ”


<사진·글 이준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