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는 이날 2013년 발간한 박유하교수의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피해자들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고 이에 따른 법원의 수정 명령, 한국의 일부 학자들이 제기한 표현의 자유 주장, 일본의 반응 등을 상세히 다뤘다.
뉴욕타임스는 일본이 가한 식민지배 고통과 역사정의의 필요성을 불가침의 영역으로 인식하는 한국에서 위안부피해자들이 세종대에 박교수의 파면을 요구하고 있으며, 사람들로부터 일본 전쟁범죄를 옹호하는 친일파로 비난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임스는 "박교수의 책이 그간 다른 많은 이들이 제기한 것보다 정확한지 여부는 결정하기 어렵지만 그녀가 수십년간 한국인들에게 상식으로 여겨졌고 일본에 대해 남아있는 확고한 적대감에 도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유하 교수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위안부의 다른 면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위안부이슈를 희석하고 일본에 관용을 베푸는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타임스는 "공식적인 위안부의 역사는 일본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에서 군대가 운영하는 매음굴에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가 2차대전에서 패망할때까지 성노예 생활을 시킨 것이지만 박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풍부한 자료와 생존 위안부여성과의 인터뷰를 통해 위안부여성에 대한 불쾌한 부분을 가린 획일적 이미지가 한일간 많은 감정적 분쟁을 심화시키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이어 "박교수가 위안부여성들의 삶에 관한 더욱 복잡한 견해를 얘기하려는 것들이 한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일부에서는 반역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박교수는 '강간과 매춘생활을 하는 위안소에 여성들을 강제로 혹은 꼬임에 빠트리는 일은 일본인 모집책만이 아니라 한국인 부역자들도 이익을 취했다'고 말한다. '일본정부가 공식 관여한 증거가 없기때문에 따라서 한국여성들을 (매음굴에) 강제한 것은 합법적이라는 것'이다. 비록 이따금 노예상태와 같은 잔혹함이 매음굴에서 있었지만 일본식민지하의 한국과 대만 여성들은 일본제국의 시민으로 대접받고 그들의 행위가 영웅적인 것으로 고려되었다. 그들은 일본군인들과 동지적 관계가 구축됐다. 때로는 그들간에 사랑이 있었고 일본군인들은 아픈 여성들을 돌보기도 했고 심지어 매춘부가 되지 않도록 돌려보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타임스는 "그녀의 책은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돼 상을 받았다. 지난달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구속하는 한국검찰을 비판하는 성명을 낸 일본과 미국의 54명 지식인 가운데는 1993년 위안부 동원을 인정한 '고노담화'의 주인공 고노 요헤이도 포함됐다"고 전했다.
또한 이달 190명의 한국인 학자들과 문화계 인사들은 박유하 교수에 대한 고발장은 시대착오적 시도이며 그녀가 책에서 주장하고 노력한 것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또다른 나라의 380명 학자들과 시민운동가들은 그녀가 법적인 이해의 진지함을 소홀히하고 이같은 이슈가 일본정부의 책임이라는 본질을 회피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녀의 가장 터무니없는 실수는 선별적으로 고른 여성들의 사례를 일반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교수를 고소한 8명중 한명인 위안부피해자 유희남(87)씨는 "그녀를 우리나라에서 축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타임스는 "박교수는 한국서 고교졸업후 가족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대학을 졸업하고 와세다대에서 일본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과거 책에서도 위안부 주제를 건드린 적이 있다. ‘화해를 위하여'에서 양국간 고통받은 관계를 치유하는데 깊은 관심을 보였다. 2011년 출간한 책에선 위안부를 매춘부로 묵살하는 사람들과 한국의 옹호자의 간극을 좁히려 했다"고 소개했다.
그녀는 가부장적인 사회와 국가통제주의 가난이 위안부 모집의 원인이 됐다고 말한다. 중국의 경우 정복된 땅에서 위안부들이 나온 것과 달리 한국은 오늘날 가난한 여성들이 매춘부가 되는 것처럼 위안소에 보내졌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위안부를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미군을 따라다니며 '담요부대(blanket corps)'로 불린 한국인 매춘부들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녀는 한국인 위안부들이 희생자들인 동시에 식민지 시민으로서 협력자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일본정부가 여성의 강요된 모집을 직접 명령하지 않았고 일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위안소에 가담했다면 그것이 일어나도록 허용된 식민지구조를 만든 원죄에 대한 책임이 여전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들의 명예훼손을 할 이유가 없다. 1945년 해방이후 모든 위안부들은 그들의 부모와 그들을 팔아버린 한국인 모집책의 증오와 같은 많은 기억을 지웠다. 그들은 반일감정을 촉발하는 민족주의적 운동가들에 의해 억지로 떠맡겨진 역할, 희생된 국가의 상징으로 기대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녀는 "여성들이 자발적이었든 아니든, 매춘을 했든 안했든 우리 사회는 그들이 순수하고 죄가 없는 소녀들로 남아있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한국인들은 일본에 책임을 지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때문"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의 이번 기사는 박유하교수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반영했지만 정작 미국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부분 냉소적이었다. 공감수가 많은 상위권 댓글들은 일본의 위안부범죄에 분노하고 박교수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이 절대적으로 우세했다.
미동부시간 19일 오후4시 현재 가장 공감수가 많은 톱10의 댓글을 소개한다.
1. "이 기사는 작가로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한국국민들의 분노 또한 이해할만 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높은 형태는 당사자들에게 알리고 동의를 얻었느냐(informed consent)이다. 이 두가지가 결여된다면 민주주의는 부패한 것이다. 위안부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았는가? 그리고 그들로부터 동의를 얻었는가? 난 두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일부 위안부들이 그들과 관계한 군인들과 어떠한 감정을 공유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미국에서도 노예상태의 피해자들이 그들의 소유자로부터 잘 대우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의 논리다." 마리(네브라스카)
2. "노예가 주인에 협조하고 잘 지내도 노예다. 협조하지 않고 부역하지 않는 노예는 죽은 노예다." 마크 쉬리스(라과나 비치 캘리포니아)
3. "이 기사는 민족주의적 신화와 과거의 추한 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나라의 민족주의적 신화에 밑줄을 긋고 있다. 박교수의 이야기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식민주의 체제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진짜 삶이 느껴진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춘을 하게 됐는가? 변명은 할 수 없지만 이해는 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인들은 흑백논리로 역사관을 단순화하고 싶어한다. 일본을 변명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이웃국가에 위안부문제를 포함해 저지른 진짜 범죄에 대한 언급을 조직적으로 거부해왔다. 그들의 살육을 고의로 회피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숀 내린 (프레드릭슨 캐나다)
4. “일본에서 살아본 사람으로서 일본인은 2차대전에서 어떠한 범죄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은 베트남과 다른 지역은 고사하고 중국과 한국의 침략에 관해서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역사교과서를 자신들이 역사의 희생자처럼 보이도록 고쳐쓴다. 결국 한국여성의 성노예와 일본의 역사부인은 당사국들이 역사를 다시 쓰는 조심스러운 동화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도 흑인노예들은 성노예가 되었다 당시엔 합법이었다. 제퍼슨(대통령)도 많은 노예소유주중 하나였다. 이 나라에서 흑인은 여전히 이등시민이다. 우리가 일본보다 나을게 없다." 폴(프린스턴 뉴저지)
5. "많은 여성들이 노예가 되어 지속적으로 강간당하고 때로는 살해되고 병에 걸려 죽음으로 그들의 고통을 끝냈다. 만일 한국여성들이 모든 사실들을 기억하기엔 혼란스럽거나 문화적 노예상태에 익숙해졌다면 그들이 어떻게 잔혹하게 대접받았는지 인도네시아에서 성노예로 끌려간 네덜란드 여성들에게 물어보라. 그들도 같은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그 시절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남성들은 일하다 죽었다. 아무리 가능한 작은 친절을 베풀더라도 일본이 속죄하지 않는 추악한 역사를 바꿀수는 없다." 에릭(뉴욕)
6. "19세기 인도에서 영국군대는 군인들의 성병확산을 줄이기 위해 위안부제도와 비슷한 것을 만들었지만 선교사들의 강력한 반발로 백지화하고 식민지 성산업을 운영하는 민간에 위탁했다. 베트남전쟁에서도 민간업자들이 있었고 미군이 주둔한 방콕과 마닐라, 서울도 마찬가지다. 한국인 위안부에 대한 총체적 문제는 한국이 일본지배하의 희생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을 분노케하는 것은 불행한 여성들을 끌어들인 일본인에 부역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많은 한국인들이 식민지배자들에게 협력했고 일본 제국주의 군대장교였던 박대통령의 아버지를 포함해 소수는 잘 되었다." 도날드 시킨스(와이파후 하와이)
7. "희생자가 언제 부역자가 된다는 것인가? 어떻게 성노예로 강요받은 여성들이 그들을 강간한 자들과 사랑을 나눌수 있는지 설명해보라. 고객인가? 연인인가? 전시에 남자의 욕구라는 개념을 얘기하는 것은 절제된 표현이다. 아프간에서 미군은 밤마다 상관의 소년이 쇠사슬에 묶인 침대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듣고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IS 전사들은 야지디 여성들을 잔인하게 강간하기 전에 그들의 신에게 기도를 한다. 베트남에서 미군이, 한국에서 일본과 미국이, 독일이 러시아를 침략했을 때 등등 끝이 없다. 여성과 아이들은 전쟁의 희생물이다 때로 우리의 압제자들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노력을 통해 잔인한 상황을 아무리 좋게 말해도 만드는 것인 우리가 부역자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고대 그리스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위안부들에게 누가 위안을 주었단 말인가." 메미(캐나다)
8. "스톡홀름 신드롬에서 인질들은 생존을 위해 가해자들에 의존하고 협력하는 행동을 한다. 절박감에서 충성과 헌신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복종이다. 박유하의 관점은 남성 포주와 모집책 등 한국인 남성부역자들이 일본침략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성들을 꼬드겼다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다른 상황에서 비슷한 것들을 보았다.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에서 여성들을 인신매매해서 매춘부로 만드는 과정에서 협력적 관계를 본다.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이 여성들을 학대하고 미군이 필리핀과 베트남, 한국, 보스니아, 이집트, 독일, 콜럼비아 등 세계 곳곳에서 원치 않는 여성들을 섹스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유인하는 적들과의 협력을 우리는 보았다. 여성은 이상하고 잔인한 남성들이 강요하지 않는 이상 성관계를 맺지 않는다. 종종 생존을 위해 이같은 상황에 따를 뿐이다." 엘리자베스(캠브리지)
9. "박유하는 다음엔 미국의 오래된 노예제를 옹호하게 될 것이다. '위안부'는 모든 아시아인들의 주인이 된 일본의 파시즘의 부산물이다. 사악하고 한국의 장사꾼들이 성노예산업의 전초병으로 있었다고 일본 정부와 군부의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베의 친구들이 역사를 다시 쓰는 노력처럼 더 많은 파시스트를 위한 재평가가 행해질 것이다." 폴(오클랜드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10. "2차대전중 수십만명의 여성들이 성노예가 되어 세계 많은 군대기지에서 매춘을 하도록 강요받은 것에 동조하는 일부 댓글의 무지가 믿어지지 않는다. 자발적인 매춘과 일본인의 성노예로 보수를 받은 경우라도 선택할 자유는 없었으며 절대 다수는 돈도 받지 못하고 죽었다."
'其他 > 韓.日수교50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부 조선통신사의 길]쇄국 日의 유일한 외국사절… 구경꾼 몰고다닌 ‘한류스타’ (0) | 2015.12.28 |
---|---|
이영 교수 “14세기 말 왜구는 日 남북조시대 남조의 무사 집단” (0) | 2015.12.26 |
[광화문에서/허문명]韓日 진정한 화해를 위해/[논쟁]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 기소를 어떻게 볼 것인가 (0) | 2015.12.16 |
쇄국 日의 유일한 외국사절… 구경꾼 몰고다닌 ‘한류스타’ (0) | 2015.12.11 |
[제2부 조선통신사의 길]고승의 詩로 향수 달랜 통신사들, 석별의 정 글로 남겨 (0) | 2015.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