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의 고지형(古地形) 분석연구를 통해 한성백제 당시 왕의 처소가 추정됐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풍납토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이홍종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의 ‘한성백제기 도성권의 지형경관 연구’를 토대로 올해 하반기 풍납토성 유적 발굴작업에 나선다고 3일 밝혔다. 풍납토성은 개간ㆍ홍수에 따른 지형 변화가 많은 전형적인 충적지로, 육안으로는 유적의 분포범위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1970년대 이후 대규모 국토개발도 이런 상황에 일조했다. 하지만 지형도와 시대별 항공사진을 판독하면 옛 유적의 위치와 분포, 잔존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분석결과 풍납토성은 수차례 한강의 범람과 퇴적 탓에 자연제방이 생기면서 들어섰고 주변 석촌동 고분 일대는 대규모 침식 단구가 확인됐다. 이는 구석기 이후 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또 풍납토성 북쪽 성벽의 잔존상태가 양호해 외곽의 해자는 자연적인 것이 아닌 대규모 토목공사로 설치된 것으로 추정됐다. 북쪽 성벽 중앙에는 돌출된 성문 1곳, 동쪽 성벽 3곳에서도 성문으로 추정되는 흔적도 발견됐다.
풍납토성 내부는 크게 3단계로 이뤄졌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1단은 서쪽부터 보면 동쪽보다 자연제방이 낮아 토목공사 때 평탄화 작업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이며, 이런 정황을 볼 때 왕의 처소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 자료를 보면 민간 교육기관인 경당이 이곳에 있어 이를 반증한다.
2단은 낮은 계층의 처소 또는 부수 시설물 공간으로 추정되고, 3단은 서쪽에 집수장과 배수시설, 동쪽으로는 성 밖의 해자로 연결한 배수의 흔적이 관찰됐다.
강희은 시 역사문화재과장은 “연구 결과 ‘왕의 처소 추정 터’와 유적 자료 상의 ‘경당’ 위치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올해부터 실제 발굴에 들어가 한성백제기 유적심층연구를 본격화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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