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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노력에 답이 있다

바람아님 2016. 6. 7. 23:48
[중앙일보] 입력 2016.06.07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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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뉴디지털실장


조기교육이란 단어가 미취학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주입식’ 영어·수학 교육의 다른 말처럼 변질된 탓인지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교육의 수익률, 다시 말해 돈 들인 만큼의 효과는 어릴수록 더 높다는 게 (교육)경제학자들 사이에선 상식이다.

이와 관련한 유명한 연구가 시카고대 제임스 헤크먼 교수팀의 페리 유치원 프로젝트다. 추첨해 선발한 저소득층 3~4세 어린이 58명(실험군)에겐 소수인원 학급 등 훌륭한 교육을 제공하고, 추첨에서 떨어진 65명은 일반 교육을 받는 비교군으로 삼아 1960년대부터 40년 넘게 추적조사를 했다. 결과는 놀랍다. 졸업 후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 유치원 교육의 효과가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고용과 연소득은 물론 범죄율에도 두 집단 간에 큰 차이를 보였다.

아마 대다수는 공부를 잘 배운 덕에 좋은 학교에 가서 인생이 달라졌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험 결과 IQ 같은 인지능력의 효과는 단기적이었다. 졸업 후 1~2년 새에 실험군과 비교군의 격차가 거의 사라졌으니 말이다. 장기적으로 인생을 바꿔놓은 건 성실함과 사교성 같은 비인지능력이었다.

일본의 교육경제학자인 나카무로 마키코는 『데이터가 뒤집은 공부의 진실』에서 이를 ‘살아가는 능력’이라고 표현하면서, 특히 끈기를 중요하게 봤다. 앞서 앤절라 리 덕워스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도 TED 강연에서 “끈기(grit)란 성공을 예측할 수 있는 성격”이라며 어떤 환경에서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렇다면 끈기는 어떻게 얻어질까. 재력처럼 부모로부터 물려받아야 하는 걸까. 캐럴 드웩 스탠퍼드대 교수는 마음가짐(mindset)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능력이란 노력해서 키울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런 믿음을 토대로 노력한 아이가 끈기가 강한 사람으로 큰다는 것이다. 반대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예컨대 인도에선 시험 직전에 본인의 낮은 카스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시험 성적이 나빠졌다. 결국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흙수저 계급론이 판치는 한국 사회에선 지금 “노력이 소용없는 세상을 만들어주어 미안하다”며 얄팍한 힐링을 선사하는 어른들로 넘쳐난다. 위의 연구대로라면 힐링은커녕 고정관념을 자꾸 환기시켜 더 나쁜 환경으로 몰아갈 뿐이다. 진짜 다음 세대를 걱정한다면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여전히 노력에 답이 있다고.

안 혜 리
뉴디지털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