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끼워 맞추기식 책임 추궁에서 자유로울 엄마는 없다. 아이에게 전적으로 매달리지 못한 워킹맘은 ‘트집’ 잡힐 일이 특히 많다. 아이의 편식도, 충치도, 비만도, 키 작은 것도 다 “일하는 엄마 탓”이 되곤 한다. 남들의 평가보다 더 큰 문제는 워킹맘 스스로를 괴롭히는 자아비판이다.
‘죄책감을 갖지 말라’는 워킹맘의 생활수칙 1조 1항 같은 문구다. 육아책마다, 육아전문가마다 앞세워 강조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이 말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아이들에게 생기는 문제는 대부분 감기나 장염같이 1주일 정도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엄마 잘못을 곱씹어 자책할 필요까진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든 뒤로는 사정이 달라졌다. 제 자리로 굳어지는 아이들의 성적과 성격이 마음에 차지 않을 때마다 ‘엄마’란 이름이 원죄처럼 무겁게 다가왔다. 고3인 첫째는 매번 한발 늦게 입시 정보를 알아 오는 엄마 탓에 늘 남 뒤쫓아가느라 허덕이는 것 같았고, 중3 둘째가 밥 먹을 때조차 스마트폰에서 눈을 못 떼는 것은 늦은 퇴근으로 거의 매일 혼자 저녁식사를 하게 만든 엄마 탓인 것 같았다. 이런 죄책감은 우울하고 파괴적인 감정 소모로 이어졌다.
부질없는 죄책감의 실체는 남의 일일 때 더 분명히 보였다. 얼마 전 MBC 드라마 ‘워킹맘 워킹대디’에서 유치원생 딸이 소풍날 시판 김밥을 먹고 체하자 워킹맘인 엄마가 “미안해, 잘못했어”라며 우는 장면이 나왔다. 물론 엄마가 직접 싸준 김밥을 먹었다면 체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꼭 그랬으리라 장담할 일도 아닌 듯했다.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길 때마다 태교까지 거슬러올라가 엄마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불합리한 처사다. 엄마에게 무한 책임을 요구하는 풍토에서 누가 선뜻 아이 낳을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정말 다 엄마 때문이란 말인가. 거꾸로 아이의 성취를 무조건 엄마의 공(功)으로 내세우려는 사람들에게도 묻고 싶다.
이지영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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