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원(洗美苑)에는 조선 후기 문인화가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歲寒圖)를
현실에 구현한 세한정(歲寒庭)이란 정원이 있다. 몇 장의 사진을 소개한다.
(2016_0625-세미원, 삼성 EX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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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세한도(歲寒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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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시작부분의 "藕船 是賞 阮堂"은 <‘우선(藕船)! 이것을 감상해보게(是賞) 완당(阮堂)'>이란 의미이고 '우선(藕船)'은 이상적(李尙迪·1804~1865)의 호다 노송(老松)이 김정희(金正喜)라면 나란히 있는 청송(靑松)은 이상적(李尙迪)이다 집 맞은편에 두 그루의 잣나무(柏)가 그림의 균형을 잡아준다. |
세한도(歲寒圖)의 발문 세한도의 창작배경과 시점은 추사의 발문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지난 해(1843, 헌종9)에 『만학집晩學集』과 『대운산방집 大雲山房集』 두 책을 부쳐주었고, 금년에 또 우경藕畊이 지은 『황청경세문편皇淸經世文編』(『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을 부쳐주었다. 이들 책은 모두 세상에서 언제나 구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니, 천만리 먼 곳에서 구입한 것이고 여러 해를 거듭하여 입수한 것이지, 한 때에 해낸 일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의 도도한 풍조는 오로지 권세가와 재력가만을 붙좇는 것이다. 이들 책을 구하려고 이와 같이 마음을 쓰고 힘을 소비하였는데, 이것을 권세가와 재력가들에게 갖다주지 않고 도리어 바다 건너 외딴섬에서 초췌하게 귀양살이 하고 있는 나에게 마치 세인들이 권세가와 재력가에게 붙좇듯이 안겨주었다. 그대 역시 세속의 거센 풍조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다. 그런데 어찌 그대는 권세가와 재력가를 붙좇는 세속의 도도한 풍조로부터 초연히 벗어나, 권세나 재력을 잣대로 삼아 나를 대하지 않는단 말인가? 사마천의 말이 틀렸는가? 하셨다. 소나무․잣나무는 사철을 통해 늘 잎이 지지 않는 존재이다. 엄동이 되기 이전에도 똑같은 소나무․잣나무요, 엄동이 된 이후에도 변함 없는 소나무․잣나무이다. 그런데 성인께서는 유달리 엄동이 된 이후에 그것을 칭찬하셨다. 대해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의 곤경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겠지만, 나의 곤경 이후의 그대는 역시 성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 성인께서 유달리 칭찬하신 것은 단지 엄동을 겪고도 꿋꿋이 푸르름을 지키는 송백의 굳은 절조만을 위함이 아니다. 역시 엄동을 겪은 때와 같은 인간의 어떤 역경을 보시고 느끼신 바가 있어서이다. 따라 붙좇고 돌아섰다. 그러고 보면 하규下邽 땅의 적공翟公이 대문에 방榜을 써 붙여 염량세태炎凉世態를 풍자한 처사 따위는 박절한 인심의 극치라 하겠다. 슬프다! <출처-모암문고 http://moam.egloos.com/v/2567788> |
블로그 내 세미원 관련글 | (한겨레신문 2013.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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