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본관 4층에 학생 30여 명이 모여 있다. 보직 교수 사무실인 각 방은 이들의 대책회의 장소가 됐다. 사무실에는 학교 운영에 관한 문서가 널려 있고, 학생 20여 명은 전기 매트를 깔고 매일 밤 이곳에서 잔다. 그러는 동안 셔틀버스 개선, 경전철 개통 실무협의 등 학생들의 생활과 관련된 논의는 중단됐다.
12일 서울대 본관의 풍경이다. 서울대 총학생회가 시흥캠퍼스 설립 실시협약 전면 철회를 주장하며 본관을 점거한 지 64일째 되는 날이다. 이들은 “확실한 청사진 없는 시흥캠퍼스 설립에 반대한다”며 10월 10일에 본관을 점거했다. “소통 부족을 인정한다”는 성낙인 총장의 사과(9월 6일)와 긴급 공개 토론회(10월 22일)가 이어졌지만 그게 끝이었다. 학생들은 “전면 철회”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학교는 “불가능하다”고 맞서는 새 두 달이 흘렀다.
본관 점거 중 새로 당선된 총학생회장은 여학생을 대상으로 “꽃밭이 어디 있느냐”는 성희롱적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도덕성에 흠집이 생겼다. 일부 학생은 탄핵 요구를 하고 있다.
서울대 경영대 4학년 노모(26)씨는 “마구잡이식 의혹 제기와 타협 없는 싸움을 보면서 우리가 삼류라고 헐뜯는 정치권과 다른 게 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많은 교수와 학생들은 이 사태에 관심이 없다. “본관 점거가 계속되고 있느냐”고 묻는 교수도 있을 정도다. 이 대학의 한 교수는 “서울대가 보통 시민들의 의식 수준에도 못 미치는 모습”이라고 개탄했다.
매 주말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을 이끌었다. 민주적 의사 표시와 질서 유지라는 선진적 태도 덕분이었다. “정치가 망친 한국을 촛불이 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곧 방학을 맞고 캠퍼스는 텅 빈다. 대화 단절의 반목을 끝낼 때가 됐다. 최고의 지성이 모였다는 곳 아닌가.
윤재영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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