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08 선우정 논설위원)
어제 아침 신문 대부분이 1면에 같은 장면 사진을 실었다.
그저께 최순실 사건 국회 청문회에 나간 대기업 총수들이 손을 번쩍 들고 있는 모습이다.
"전경련 해체에 반대하시는 분들 손들어보세요"라는 의원 요구에 답한 것이다.
손든 총수 가운데 최연장자는 일흔아홉, 다음은 일흔하나다. 질문한 국회의원 아버지뻘이다.
법 앞에선 위아래가 없다지만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나 싶었다.
"예, 아니요로 답하세요" 하는 호통엔 민망하다는 국민 반응도 있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송구스럽다" "죄송하다"를 연발하며 중요한 답변을 피했다.
'못한다'소리도 들었지만 동정표도 받았다. 워낙 당했기 때문이다.
"돌려막기 재용" "머리 굴리지 말라" "(삼성) 직원에게 탄핵받을 것" "삼성 입사 시험서 낙방할 것 같다"….
권력이 CJ그룹 오너 경영인을 강제로 끌어내린 일에는 분개하던 의원들이 "경영권을 넘기는 게 어떤가"라는 말까지 했다.
▶어제 청문회에선 차마 입에 못 올릴 말까지 나왔다.
증인으로 나온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세월호 시신 인양에 반대했다는 의혹을 야당 의원이 제기할 때였다.
의원 발언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김기춘 증인, 당신께서는 죽어서 천당 가기 쉽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반성 많이 하십시오!"
김 전 실장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여론의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옥에 가라'는 식의 저주는 심했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국민이 할 수 있는 한계는 법적 심판이다.
아무리 최순실 태풍이 분다지만 저승길까지 뭐라 하는가.
▶청문회에서 증인들은 "모욕적 언행으로 국회의 권위를 떨어뜨릴 때 고발당한다"는 경고를 공개적으로 듣는다.
하지만 정작 모욕적 언행으로 국회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이는 대부분 국회의원이다.
의혹 있는 재벌이나 권력자를 면전에서 모욕하고 저주하면 후련하다는 지지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의원이 정교한 질문으로 증인이 감춘 비밀과 진실의 매듭을 풀어낼 때 더 통쾌함을 느낀다.
▶1954년 매카시 의원이 주도한 미 상원의 육군 청문회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청문회로 꼽힌다.
청문회를 통해 미 육군 안에서 암약하던 공산주의자를 색출해서가 아니다.
반대로 인신공격과 막말, 호통으로 미국 사회를 겁박해온 당대의 권력자 매카시 의원이 육군 측 변호사의 발언 한 방에
정치적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좀 예의를 차릴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당신에게는 인격도 없습니까?"
칼자루를 쥐고 있을 때 품위를 지켜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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