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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5번 딸들과 저녁식사" 약속 지키려 6시반 칼퇴근

바람아님 2016. 12. 31. 23:36
동아일보 2016.12.31 03:02

[글로벌 기획]오바마 대통령 부부의 좌충우돌 육아법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부인 미셸(왼쪽), 첫째 딸 말리아(왼쪽에서 두 번째), 둘째 딸 사샤(오른쪽)와 함께 취임 첫해인 2009년 초 백악관 집무실 소파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딸을 향해 짓는 오바마의 미소가 익살스럽다.
사진 출처 미셸 오바마 트위터·백악관


 ‘내가 도대체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2009년 1월 남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에 들어온 미셸 여사(당시 45세)는 처음 두 딸을 등교시키며 상념에 빠졌다. 말리아와 사샤(당시 11세, 8세)를 총으로 무장한 보안요원과 함께 시커먼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태워 보내야 했다. 백악관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갔을 텐데 말이다. 올해 6월 백악관 여성단체 회의에서 미셸은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핑 돈다.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미쳐 버릴 것 같은 혼란 속에서 애들을 온전하게 키우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는 정신없는 8년을 마치고 내년 1월 백악관을 떠난다. 현지 언론은 특히 젊은 부부의 좌충우돌 백악관 육아 뒷얘기에 주목한다. 1961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당시 44세) 이후 최연소 대통령(48세)이었던 오바마는 전직 대통령들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백악관에 입성했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 워킹맘 생활을 했던 미셸은 남편과의 육아 분담을 유독 강조하는 아내였다. 자녀에게 손이 많이 가는 때이자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를 맞았던 오바마 부부는 백악관에서 머물렀던 지난 8년 동안 어떻게 아이를 키웠을까.


“미셸이 하라는 대로 합니다”

 미셸은 그동안 인터뷰에서 이따금 ‘독박 육아(육아를 도맡아 하는 것)’로 인한 속앓이를 내비쳤다. 그는 남편이 재선된 다음 해인 2013년 CBS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의 처지를 “바쁜 미혼모 같다”고 말했다가 실수했다고 생각한 듯 “대통령 남편을 두면 약간 혼자인 듯 느낄 수 있지 않겠나. 하지만 남편은 우리 곁에 있다”며 말을 이어 갔다.


 미셸은 변호사 경력을 남편을 위해 포기한 경험도 종종 털어놨다. 2014년 6월 백악관 맞벌이 가족 회담에서 소개된 일화에 따르면 미셸은 버리기 아까운 경력을 자랑했다. 둘째 사샤를 낳은 직후 로펌 상사에게 복직 계획을 묻는 연락을 받았다. 집에서 너저분한 수유복을 걸치고 두 딸을 달래며 미셸은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에겐 어린 두 아이가 있는데 남편은 상원의원 선거에 나갑니다. 근무 일정을 유연하게 배려해 주세요. 베이비시터를 구해야 하니 봉급도 좋은 조건이길 바랍니다. 이 모든 걸 해주실 수 있다면 일을 잘 해내고야 말겠습니다.”

 상사는 요구를 받아들였고 미셸은 무사히 복직했다. 이렇게 실력을 인정받다가 백악관에 따라 들어온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 오바마는 자서전 ‘담대한 희망’(2006년)에서 “현대 가정에서조차 여성이 지는 육아 부담이 더 무겁다고 미셸이 주장할 땐 정말 다툴 수가 없다”며 아내의 희생에 난감해했다.


 좋은 대통령과 좋은 아빠의 갈림길에서 오바마는 아내를 더욱 경청하고 사랑하기로 다짐했다. “난 그저 미셸이 시키는 대로 따릅니다. 그렇게 하면 일이 잘 풀려요. 남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아내 말을 잘 들어주는 겁니다.”(2015년 9월 미군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회식이나 선약은 매주 2번만

 “1주일에 3일 이상 일하지 않겠어요.”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셸은 2009년 백악관에 처음 들어왔을 때 참모들에게 이같이 선언했다. 대통령 부인 일정보다 두 딸의 학교 행사가 우선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미셸은 스스로를 ‘엄마 대장(Mom in chief)’이라고 칭했다.

 오바마도 딸과의 시간을 위해 확고한 원칙을 정했다. ‘대통령 아빠들(First Dads): 조지 워싱턴에서 버락 오바마까지 양육과 정치’의 저자인 조슈아 켄들에 따르면 오바마는 기부자나 동료 정치인과의 저녁식사 약속을 주중 2번만 한다. 꼭 5번 이상 저녁식사를 가족과 하겠다고 참모들에게도 말해 뒀다. 오바마의 전직 수행원 레기 러브는 “가족 저녁식사가 꼭 상황실 회의 같았다.


 대통령은 오후 6시 반만 되면 하던 일을 대담하게 끊고 식사하러 갔다”고 전했다. 오바마가 이 약속을 칼같이 지켰다는 것이다.

 저녁식사에는 오로지 부부와 두 딸만 참석했다. 심지어 육아를 돕던 오바마 장모 메리언 로빈슨조차 식탁에 앉지 못했다. 가족이 편하게 대화하기 위해서다. WP는 두 딸 학교에서 열리는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기, 딸에게 농구 가르치기, 이따금 아빠 엄마만의 저녁 데이트 이해해주기 등도 오바마 가족의 철칙이라고 전했다.


 오바마의 유별난 육아 철학에 대해 보좌진이 불만을 늘어놓기도 했다. WP는 “보좌관들은 대통령이 육아에 시간을 들이는 탓에 워싱턴 정치권이 기대하는 대화 자리나 세부 사항을 조율할 여유를 충분히 갖지 않았다고 불평했다”고 보도했다.


TV, 스마트폰 없는 대화 시간

 오바마 부부는 두 딸에게 시련을 맛볼 기회를 주려 했다. 딸들이 냉엄한 현실을 알아야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일종의 담금질인 셈이다. 미셸은 2012년 10월 ABC방송 ‘지미 키멜 라이브’에 출연해 딸들이 최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해 봐야 한다며 “아이들이 정말 힘든 일이 어떤지 맛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도 2014년 5월 ‘퍼레이드 매거진’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늘 즐겁지만은 않고 격려해 주지만은 않는, 그리고 공평하지 못한 일을 경험할 기회를 찾고 있다. 우리 대부분이 매일 이런 과정을 겪고 있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오바마 부부의 조언에 따라 사샤는 올 8월 매사추세츠 주의 해산물 레스토랑 ‘낸시스’에서 매일 오전 7시 반에 출근해 아르바이트로 허드렛일을 했다. 장녀 말리아도 지난해 미국 HBO방송 드라마 ‘걸스’ 제작 부서에서 인턴으로 뛴 뒤 올해 하버드대 입학을 앞두고 ‘갭 이어’(gap year·학업을 쉬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를 선택했다.


 오바마 부부는 대접받는 백악관 생활에 두 딸이 버릇없어지진 않을지 노심초사하며 훈육의 끈을 바짝 조였다. 남편이 대통령으로 처음 당선된 2008년 11월 미셸은 ABC방송 인터뷰에서 “백악관 참모들을 만났을 때 다들 ‘와, 딸들이 정말 훌륭하네요’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한 선을 정해 두고 애들이 침대 정리 정도는 스스로 하게 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설명했다.


 오바마는 잠자는 시간, 텔레비전 시청, 채소 충분히 먹기에 있어서만은 ‘호랑이 아빠’로 돌변했다. 인터넷 매체 브레이트바트에 따르면 오바마는 지난해 9월 미군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TV 없이 휴대전화는 어딘가에 던져두고 대화를 하는 게 좋은 육아법이라고 절실히 믿는다. 채소를 충분히 먹어야 하기 때문에 애들이 채소를 천천히 꼭꼭 10분간 씹은 뒤 삼켰는지 일일이 확인한다”고 말했다.


부성애가 사회 변혁의 원동력

 오바마는 자타가 공인하는 ‘딸 바보’다. 지난해 12월 백악관 인턴과의 대화에선 “내 인생 마지막 순간 기억할 일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내 답은 대통령으로서 한 어떤 일도 아니다. 딸의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고 해 지는 장면을 감상하며 딸이 탄 그네를 밀어준 것”이라고 밝혔다.


 올 3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공식 만찬에서조차 오바마는 딸 생각을 했다.

 “딸들이 너무 빨리 자라버렸습니다. 올가을 말리아가 대학에 가지요. (잠시 말을 끊고) 제가 목이 메었네요. 중요한 건 우리가 권력을 위해, 명성을 위해, 재산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그리고 모든 이들의 아이들을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오바마 정치의 원동력은 부성애에서 나옴을 고백한 말이었다. 오바마의 자식 사랑이 유달리 깊은 이유는 자신의 불우했던 과거 때문이다. 그는 자서전 ‘담대한 희망’에 “자식을 나 몰라라 하는 생부(生父)의 무책임함과 의붓아버지의 서먹한 태도, 외할아버지의 실패와 좌절이 모두 내게 생생한 교훈이 됐다. 나는 자식들에게 믿음직한 아버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적었다.


 오바마는 재정만 축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 복지 및 교육 정책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밀어붙였다. 2014년 유색 인종 젊은이들이 잠재력을 키우도록 멘토링과 직업 기회를 주는 자원봉사단체 ‘마이 브러더스 키퍼’도 설립했다. 작가 조슈아 켄들은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오바마의 양육과 정치를 이렇게 평가했다.

 “오바마에게 좋은 양육은 사회 변혁을 위한 강력한 도구가 됐다.”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