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역사 종횡무진… 세계 정세 한눈에]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 추천 '지리의 힘'
팀 마샬 지음|김미선 옮김|사이| 2016/ 368쪽|1만7000원 340.98-ㅁ166ㅈ/ [정독]인사자실(새로)/ [강서]2층
영국 유학 시절, 사립학교 출신 귀족 학생들과 함께 어울린 적이 있다. 한 학기를 보내면서 이들이 다른 어떤 분야보다 역사와 지리에 해박하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제국을 경영했던 후예들의 독특한 시선이랄까? 시간을 짚어내는 '역사'와, 공간을 구성하는 '지리'에 관한 지식과 통찰력은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었다. 특히 지리는 곧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를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팀 마샬의 '지리의 힘'(원제 Prisoners of Geography)은 제목 그대로 지리에 관한 책이다. 지리에 관한 선입관이 있다면 아마 '복잡함과 따분함'이리라. 그러나 이 책은 세계지도를 여럿으로 잘라 설명하거나, 숱한 지형지물을 열거하며 독자의 인내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인과율이 담긴 10개의 스토리텔링으로 다가간다.
왜 중국이 대륙의 올무를 끊고 해양 강국을 꿈꾸는지, 중국은 왜 티베트에 목숨을 거는지, 그에 대한 시진핑의 고민과 우려는 무엇인지 고스란히 전달된다. 같은 맥락에서 지정학적 대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의미가 일목요연하게 이해된다. 미국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다. 미국이 받은 지리적 축복과 지금 누리는 초강대국적 지위의 배경을 훑으면서 국제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견인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과, 아프간·이라크전으로 인한 피로감 사이의 딜레마를 설명한다. 저자는 1796년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퇴임 연설을 살짝 인용하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트럼프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 "뿌리 깊은 반감 때문에 특정 국가들과 반목하지 말며, 또한 어떤 국가들의 열정적인 접근에도 연루되지 말 것이며, 바깥 세계에서는 항구적인 동맹들과도 일정하게 거리를 두라."
러시아와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도 빠질 수 없다. 러시아에 크림반도 세바스토폴항이 왜 중요한지, 우크라이나 대평원과 민족 분포가 작금의 혼란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유려하게 풀어내고 있다. 카펫 양쪽 솔기가 풀려가는 유럽의 동서 분열상, 인위적 국경 분할이 초래한 중동 특히 시리아의 비극, 식민주의의 아픔이 여전히 살아 있는 아프리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때론 안타까움이, 때론 분노의 탄식이 솟구치기도 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그러나 이 무엇보다 독자의 눈길은 '강대국들의 경유지'라는 역자의 부제가 달린 한반도에 오래 머물게 된다.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고 '관리'만 가능할 뿐이라는 이 장 첫 문장에 담긴 비관은 어쩌면 우리가 부러 간과해 온 현실일지 모른다. 이어지는 엄중한 현실에 관한 저자의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한숨만 남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한반도를 둘러싼 비관적 지정학의 현실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선과 몸놀림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일 수도 있다.
원저는 러시아가 맨 앞에 놓여 있지만, 번역서 첫 장은 중국 이야기다. 복잡한 중동보다도 한반도를 앞에 둔 이유도 필경 우리 독자들을 배려한 것이리라.
가능하면 세계지도책 옆에 놓고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기를 추천한다. 이 책은 지리책이지만 지리책을 넘어선다. 국제정치와 역사, 그리고 오늘의 세계정세를 이해하게 하는 해설서다. 약간 과장을 보태면, 읽은 후 마치 세상의 큰 이치를 이해한 듯한 뿌듯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이치가 바로 '움직이지 않는' 땅과 산과 바다의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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