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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사람 제사의 비밀

바람아님 2017. 5. 24. 13:22
경향신문 2017.05.23. 20:51


“서울의 왕자·옹주가 새집을 지으면서 어린아이를 생매장한다는 소문이 돕니다.” 조선조 성종의 치세(1493~1494년)에 해괴망측한 유언비어가 퍼졌다. 땅의 기운을 다스리려고 아이들을 납치해서 생매장한다는 것이었다. 소름 끼치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경기·황해·충청도까지 아이를 업은 부모의 피난 물결로 몸살을 앓았다. 엄청난 유언비어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무신정권의 실세인 최충헌의 저택을 지을 때와, 충혜왕이 궁궐을 세울 때도 “동남동녀를 잡아 오색옷을 입혀 건축물의 네 귀퉁이에 묻는다”든지, “아이 50~60명을 궁궐의 주춧돌 아래 생매장한다”든지 하는 소문이 파다했다. 조선조 중종이나 명종 연간에도 사람 제사와 관련된 유언비어가 창궐했다.


사람을 제사의 희생물로 바친 역사는 뿌리 깊다. 하늘신과 지모신에게 사람을 바쳐 공동체의 안녕을 갈구했다. 최근 천년고도 경주 월성의 성벽 기초부에서 두 사람의 인골이 확인됐다. 5세기 무렵 사람 제사의 명백한 흔적이다. 두 사람은 성벽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희생된 것이다. 또 지난 2000년 경주의 우물 속에서 거꾸로 박힌 채 발견된 10살가량의 어린아이 유골(사진)을 보라. 각종 제사용품과 함께 발견된 아이는 산 채로 던져졌을 것이 틀림없다. 불과 1200년 전까지 사람 제사가 존재했다는 얘기다.


지금도 소름이 돋는데 고려·조선 시대는 오죽했으랴. 문제는 민심이 어지러웠을 때 이런 해괴한 소문이 퍼졌다는 것이다. 성종 때도 마찬가지였다. 홍문관 부제학 성세명은 “가뭄과 우박, 서리 등 극심한 기상이변 속에서 왕자와 옹주들은 호화저택을 건축하느라 여념이 없다”고 비판했다. 백성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은 임금과 왕족의 행태를 백성은 흉흉한 소문을 퍼뜨려 꾸짖고 있는 것이다. 성세명은 “쓸데없는 공사에 드는 돈이면 백성 1000명을 구제할 수 있다. 1000명의 목숨을 돌보지 않는 임금을 백성의 부모라 할 수 있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런데도 성종은 “무엇이 잘못이라는 거냐”고 바득바득 우겼다. 세종에 버금가는 성군으로 알려진 성종의 ‘흑역사’라 할 수 있다. 1554년(명종 9년) 불에 탄 경복궁을 중건할 때도 비슷한 유언비어가 떠돌자 영경연사 상진이 임금에게 ‘쓴소리’를 날렸다. “요망한 말이 퍼지는 이유는 인심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백성을 어린아이처럼 돌보면 백성도 임금을 부모처럼 우러러 볼 것입니다.”


<이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