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6.30 장일현 런던 특파원)
'脫원전' 선언한 獨의 이면엔 전기료 EU 둘째, 한국 3배 수준
獨 산업계 75% "투자 위축 우려"… 에너지 정책, 서둘러선 안 돼
독일이 '탈(脫)원전'을 선언한 지 만 6년이 지났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고 두 달 뒤인 지난 2011년 5월 말 독일 정부는 앞으로 11년 안에
원전 17곳을 모두 폐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노후 원자로 8기를 즉각 폐쇄했고,
나머지 9기도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세계 4위 경제 대국이자 '제조업 강국(强國)'인 독일의 탈원전은 이 시간표에 맞춰 진행 중이다.
독일 정부에 따르면, 원자력이 독일 전체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탈원전 선언 직전인
2010년 22.2%에서 2015년 14.1%까지 떨어졌다.
대신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은 같은 기간 16.5%에서 30.1%로 배 가까이 늘었다.
독일 정부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오는 2030년 50% 이상, 2050년 80% 이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원전 반대 단체나 인사들이 이런 독일을 탈원전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우리가 꼭 봐야 할 또 다른 얼굴이 있다.
우선 독일의 전기료는 유럽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비싸다.
유럽연합(EU) 통계 기관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작년 독일 가정용 전기료는 ㎾h(킬로와트시)당 29.7유로센트(약 380원)였다.
덴마크(30.9유로센트)에 이어 EU에서 둘째로 높았다.
EU 전체 평균보다 50% 가까이 비쌌고, 120원을 약간 웃도는 국내 전기료의 3배 이상이다.
독일의 전기료는 원전과 석탄 비중을 줄이고, 생산 원가가 높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면서 더 크게 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원자력기구(NEA)는
"독일에서도 원전은 가격 경쟁력이 높았다"며 "지난 2010년에 ㎿h당 전력 생산 단가는
원자력 49.97달러, 석탄 68.06~85.28달러, 육상 풍력 105.81달러,
태양전지 304.59~352.31달러 등이었다"고 했다.
탈원전은 메르켈 총리가 주도했다.
탈원전 선언 8개월 전인 2010년 9월 메르켈은 높은 전기료가 국민과 경제에 부담이
된다며 원자로 가동 연한을 평균 12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1980년 이후 지어진 원자로 10기는 2036년까지 가동키로 했다.
그러다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원전 반대 기류가 거세지자
탈원전이라는 정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싸고 효율적인 원전을 포기하면 국민과 기업의 부담이 늘게 된다.
지난 2010년 독일 가정은 한 해 전기료로 평균 829.15유로(약 106만4000원)를 냈지만,
올해는 이보다 23.4%가 오른 1023.05유로(약 131만3100원)를 낼 전망이다.
이 전기료 중엔 '재생에너지 부과금'이 23.6%나 차지한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까지 소비자가 일정 부분 부담하는 것이다.
어렵기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2014년 8월 특집 기사에서 "설문조사 결과, 독일 중소기업의 75%가 전기료 상승이 기업 경영의
주요 위험 요소라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독일 산업계에선 높은 전기료가 독일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고,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독일 탈원전의 둘째 얼굴은 활용 가능한 재생에너지가 풍부하다는 점이다.
풍력발전은 2015년 독일 전체 전력 생산의 13.5%에 이른다.
최근엔 북해에 거대한 해상 풍력발전 단지가 속속 건설되고 있다.
반면 독일과 달리 바람이 약하고 방향도 일정하지 않아 풍력발전에 어려움이 많은 게 한국 실정이다.
풍력발전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결정적 단점이 있다.
작년 독일의 육상 풍력발전은 발전기가 훨씬 늘었는데도 바람이 덜 불어 전년보다 6% 가까이 생산량이 줄었다고 한다.
독일이 우리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전력망이 주변국과 연결돼 있어 상황에 따라 전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중국·일본과 이런 네트워크가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탈핵 일정표를 이른 시일 안에 만들겠다"고 했다.
대통령 주변에선 '독일 성공 사례'를 거론하는 이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에너지 정책은 절대 서둘러선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 지적이다.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 강의'의 저자 리처드 뮬러는 "대통령은 유행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時事論壇 > 핫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文대통령 "사드는 주권사항..中, 부당한 경제보복 철회해야" (0) | 2017.07.02 |
---|---|
<포럼>60년 쌓은 '에너지 공든 탑' 파괴하나 (0) | 2017.06.30 |
[배명복의 퍼스펙티브] 사드 논란은 정부의 결정 장애와 소통 부재가 부른 참사 (0) | 2017.06.29 |
脫원전 (0) | 2017.06.29 |
"책 안 읽는 한국 보수… '보수 이념'에도 관심 없어" (0) | 2017.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