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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 (21) 워터하우스의 아리아드네

바람아님 2017. 9. 18. 02:06

(경향신문 2011.05.22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ㆍ네 운명을 사랑하라!


저기 저, 잠든 여인 뒤로 멀리 배 한 척이 떠나는 게 보이지요? 

저렇게 고요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평화로운 순간에도 배가 떠나듯 사랑이 가고 행운이 갑니다. 

그러나 또 발치에 앉아 여인이 깨기를 기다리고 있는 두 마리의 표범들처럼 사랑이 오고 행운이 걸어들어 올 것입니다. 

강제할 수도 없고 길들일 수도 없는 디오니소스의 표범이 스스로 찾아온 것을 보면 저 여인이 운명적 인물인 모양이지요? 


그렇습니다. 잠들어 있는 젊은 여인은 아리아드네고, 떠나가는 배는 그녀가 사랑한 영웅 테세우스의 배입니다.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가 잠든 틈을 타 도망가는 거고, 그녀는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한 남자에게서 버림받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버림받은 여인이라 하기엔 자태부터도 너무나 매혹적이지요? 


그녀가 입고 있는 붉은 옷은 그녀의 열정을 증거합니다. 붉은 옷 밑으로 살짝 드러나 보이는 깔개는 보라색입니다. 

보라색은 신비한 색이면서 권력의 색이지요? 붉은 열정과 보라의 힘은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서 당황하는 자의 색도 아니고, 

종속적 사랑으로 사랑을 구걸하는 자의 색도 아닙니다. 저 색은 당당하게 자기 운명을 사랑하는 자의 색입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아리아드네’, 1898년, 캔버스에 유채, 91×151㎝, 개인소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사랑이자 난제입니다. 아버지까지 배반해가며 오롯하게 사랑한 남자가 

순정한 고백이 채 마르기도 전에 이별의 말도 없이 훌쩍 떠나간 상황이니까요.


아리아드네는 미궁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가 사람 잡아먹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쳐부수고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실타래를 건네준 운명적 여인입니다. 만일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건네주지 않았던들 테세우스가 

미궁 속 미로에서 돌아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니까 테세우스를 도운 그 유명한 아리아드네의 실은 아리아드네의 

지혜 혹은 사랑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목숨도 구하고 영웅도 된 테세우스는 저렇게 아리아드네를 버려두고 떠나갑니다.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버려진 것인지,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를 감당하지 못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목숨 걸고 사랑한 존재가 ‘나’를 버리고 떠났다는 것이겠지요. 


아리아드네의 위대함은 자신을 사랑의 희생양이라 느끼며 그 화살을 테세우스에게 돌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상대에게 미움을 투사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 무엇으로도 빼앗아갈 수 없고, 그 어떤 고통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자기’를 말입니다.


사랑이 떠날 때 분노에 떨며 상대에게만 책임을 물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미움과 증오를 키워갑니다. 메데이아가 그랬지요? 

이별의 지옥을 감당하지 못해 떠나는 사람을 물고 늘어지며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메데이아 같은 사람이 있고, 

울며 탄식하며 슬픔을 깊이깊이 애도하다 슬픔을 보내는 아리아드네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어떤 형일까요? 경험해 보지 않고 상상만으로 ‘나’를 알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리아드네를 사랑한 철학자는 니체였습니다. 

<디오니소스 송가>에서 니체는 고통이 삶이 되어 탄식하는 아리아드네를 향하여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현명하라, 아리아드네!/ 너는 작은 귀를 가졌으며, 너는 내 귀를 갖고 있으니/ 

그 안에 현명한 말 하나를 꽂아놓아라!/ 자기에게서 사랑해야 하는 것을 먼저 미워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나는 너의 미로이다.” 


나는 너의 미로라니, 재밌지요? 저기서 ‘나’는 디오니소스입니다. 

테세우스의 미로를 밝혀준 아리아드네의 미로는 저 그림 속의 표범으로 요약되는 ‘디오니소스’인 것입니다. 

그러니 아리아드네는 미궁 속에 길이 있음을 알고 있는 존재면서 스스로가 미궁인 존재입니다. 

인간은 스스로가 미궁이고 미로 아닌가요?

 니체의 디오니소스가 아리아드네의 귀에 꽂아주고 싶었던 현명한 말은 이것이지 않을까요? 

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자기 운명을 사랑하는 자, 어떤 운명이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리아드네 발치의 표범, 디오니소스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경향신문(2011.1.02 ~ 2011.12.21)


< 명화를 철학적 시선으로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


(1) 반 에이크 ‘수태고지(경향신문 2011.01.02) 

(2) 클림트의 ‘다나에(2011.01.09)

(3) 벨라스케스 '거울을 보는 아프로디테'(2011.01.16)

(4) 샤갈의 ‘거울’(1915)(011.01.23)

(5) 안토니오 카노바의 '에로스와 푸시케'(2011.01.30)


(6) 루벤스 '잠든 에로스를 지켜보는 푸시케'(2011.02.06 20)

(7)수잔 발라동 '아담과 이브'(2011.02.13)

(8) 렘브란트 ‘탕자의 귀환'(2011.02.20)

(9) 루벤스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2011.02.27)

(10) 엘리후 베더의 ‘스핑크스의 질문자'(2011.03.06)


(11) 폴 고갱 ‘신의 아이'(2011. 03. 13)

(12) 고흐 ‘슬픔'(2011. 03. 20)

(13)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2011. 03. 27)

(14) 밀레의 만종(2011. 04. 03)

(15) 조지 클라우센 '들판의 작은 꽃'(2011. 04. 10)


(16) 렘브란트, 십자가에서 내려짐(2011. 04. 17)

(17) 레옹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2011. 04. 24)

(18)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2011. 05. 01)

(19)조르주 드 라 투르의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2011. 05. 08)

(20) 들라크루아의 ‘격노한 메데이아'(2011. 05. 15)



(21) 워터하우스의 아리아드네(2011. 05. 22 18:59)


(22) 티치아노의 ‘유디트’(2011. 05. 29 19:2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291926565&code=990000&s_code=ao080


(23)이 시대의 오르페우스, 임재범(2011. 06. 05 21:0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6052102335&code=990000&s_code=ao080


(24) 모로의 ‘환영’(2011. 06. 12 21:0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6122103135&code=990000&s_code=ao080


(25)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2011. 06. 1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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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클로드 모네 ‘임종을 맞는 카미유’(2011. 06. 26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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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조르주 로슈그로스의 ‘꽃밭의 기사’(2011. 07. 0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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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루벤스의 ‘삼손과 델릴라’(2011. 07. 1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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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고흐의 ‘해바라기’(2011. 07. 17 18:1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7171810135&code=990000&s_code=ao080



(31) 모네의 수련 연못(2011. 07. 24 22:2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7242220555&code=990000&s_code=ao080


(32) 르누아르의 ‘빨래하는 여인들’(2011. 07. 31 19:5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7311955575&code=990000&s_code=ao080


(34)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2011. 08. 10 21:4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102144015&code=990000&s_code=ao080


(35) 오처드슨의 ‘아기도련님’(2011. 08. 17 19:2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171924545&code=990000&s_code=ao080


(36) 렘브란트 ‘다윗과 요나단의 이별’(2011. 08. 24 19:3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241936355&code=990000&s_code=ao080


(36) 마티스의 ‘원무’(2011. 09. 07 21:1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072117585&code=990000&s_code=ao080


(38) 앙리루소 ‘뱀을 부리는 여자’(2011. 09. 14 21:1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142117305&code=990000&s_code=ao080


(39) 앙리 루소 ‘잠든 집시여인(2011. 09. 2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212109455&code=990000&s_code=ao080


(40) 세잔의 ‘생 빅투아르 산'(2011. 09. 2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281932525&code=990000&s_code=ao080


(41) 폴 세잔 ‘수욕도’(2011. 10. 0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0051853345


(42) 번 존스 ‘코페투아왕과 거지소녀’(2011. 10. 1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0122100265


(43) 쿠르베 ‘상처 입은 남자’(2011. 10. 1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0191946195


(44)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2011. 10. 2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0262142355


(45) 밀레의 ‘접붙이는 사람’(2011. 11. 0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1021842215


(46) 뭉크의 ‘절규’(2011. 11. 09 21:0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1092103325


(47) 조지 프레더릭 왓츠의 ‘희망’(2011. 11. 1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1162051265


(48) 샤갈의 ‘떨기나무 앞의 모세’(2011. 11. 3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1302103105


(49) 고갱의 ‘과일을 들고 있는 여인’(2011. 12. 0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000&artid=201112072102435


(50) 브뤼겔 ‘베들레헴의 인구조사'(2011.12.2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2212057135&code=9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