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사설] 中이 바다 하늘 넘나들어도 몸 낮추는 정부

바람아님 2018. 3. 6. 17:23

(조선일보 사설 2018.03.03)


중국 군함들이 작년에 서해에서 한·중 간 중간선을 80여 차례 넘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년도의 8배다.

올 들어선 두 달 동안에만 20차례 이상 넘어왔다. 대규모 해상 훈련을 하고 우리와 협의 없이 용도 불명의 부표(浮標)까지

설치했다고 한다. 한·중 사이 바다 경계선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중간선으로 하는 게 관행이고 상식이지만,

중국은 자기들 땅과 인구가 크다며 바다를 더 차지하겠다고 한다. 폭력적인 주장이다.


중국이 중간선을 넘어 군함 항행을 늘리는 것은 1차적으로 중간선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횟수가 늘고 규모가 커진 것을 이 때문만으로 보기 힘들다. 한반도와 주변 해역을 자신들의 영향권 아래

두겠다는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있을 것이다.

패권적 성향을 감추지 않고 있는 시진핑이 말하는 '중국몽'은 이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중국은 작년부터 울릉도와 독도 인근 동해 상공을 4차례 정찰비행 하는 등 하늘에서도 우리 남해와 동해 쪽 방공식별구역

(KADIZ)을 수시로 넘고 있다. 지난 27일에는 울릉도 서북방 55㎞ 지점(영해 경계 기준 33㎞)까지 날아왔다. EEZ 침범과

KADIZ 침범은 같은 목적 아래 이뤄지는 것이다. 서해도 아니고 동해를 중국이 정찰할 이유는 달리 없을 것이다.


중국은 서해 중간선이나 동·남해 KADIZ 침범이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영해(領海)나 영공(領空)이 아니기는 하지만 군사적 목적으로 그 선을 넘을 때는 해당 국가에 사전 통보하는 것이 국제관례다.

중국은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 정찰기가 동중국해에서 자기들 경제수역 쪽으로 다가오기만 해도

"중국의 해상과 항공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며 반발해 왔다.

미국 정찰기를 직접 위협하다가 공중 충돌한 적도 있다.


우리에게 주변 바다와 하늘은 생명선이다. 지금까지 한·미 동맹을 통해 지킬 수 있었다. 중국은 이를 허물겠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을 만만한 상대로 보고 흔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들락거리다가 결국 기정사실화할 것이다.

정부는 중국 눈치만 보고 있다. KADIZ 침범 때 중국 대사를 불러 놓고도 하루가 지나서야 공개했다.

중국이 수시로 EEZ 중간선을 침범한다는 이날 보도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이 정부는 중국만 관련되면 몸을 낮춘다.

미국에 대해 '당당하고 결연한 대응'을 말하고, 일본과는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태도와 딴판이다.

중국의 서해 중간선, KADIZ 흔들기에도 침묵한다면 정부의 기본 의무마저 저버리는 것이다.



中 '주먹 외교'


(조선일보 2018.03.03 전현석 기자)



"항행의 자유 있다"면서 남의 나라 공해·공역 침범
자국 쪽은 "들어오지 말라"

중국이 해군 함정과 군용기를 동원해 한·중 간 서해 중간선을 잇따라 넘고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하면서도 "영해, 영공 침범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 될 것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과 가까운 공해·공역을 다른 나라 함정이나 군용기가 지나갈 때 강경 대응하는 것과는 반대다.

'항행의 자유'에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올 2월까지 서해에서 한·중 양국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가운데 선인 중간선을 100여 차례 넘어오고,

군사용으로 추정되는 부표를 설치했다〈본지 2일 자 A1면 참조〉. 이들 중국 함정은 대부분 중국이 스스로 지키겠다고

정한 해상 경계선도 월선(越線)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달 27일에는 중국 군용기가 KADIZ에 진입해 울릉도

서북방 55㎞ 지점(영해 경계 기준 33㎞)까지 날아와 정찰 활동을 했다.


중국의 이 같은 중간선, KADIZ 진입은 국제 관례를 무시하고 사전 통보 없이 이뤄졌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KADIZ 침범

논란에 대해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중국에 책임을 묻는 것은 전혀 도리에 맞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중국은 '군사굴기(軍事崛起·군사적으로 우뚝 선다는 뜻)'를 표방하면서 자국과 가까운 공해나 공역에는

다른 룰을 적용하고 있다.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의 경우 인공섬을 건설해 놓고

배타적경제수역을 임의로 설정했다. 작년 10월 미 해군 함정이 남중국해 공해상을 항행하자, 중국은 함정과 군용기를

출동시켰다. 중국 외교부는 당시 "중국의 주권과 안전 이익을 엄중히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작년 7월 미국 전투기가

중국 인근 공역을 비행했을 때도 중국은 강력히 반발했었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공해나 공역에서의 항행의 자유에 대한 룰이 자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패권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강천석 칼럼] 한국 外交 쓸개가 있어야 한다


(조선일보 2017.11.24 강천석 논설고문)


한국이 중국 訓戒 받는 어이없는 일 왜 되풀이되나
지금처럼 가면 中國夢 시대는 한국의 惡夢 될 것


강천석 논설고문강천석 논설고문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을 보니 리처드 홀브룩이라는 미국 외교관이 생각난다.

홀브룩은 보스니아 내전(內戰) 종결 회담과 아프가니스탄 분쟁 수습에 뛰어난 수완(手腕)을

발휘했던 외교관이다. 그는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시절 늘 목·금요일은 도쿄에서

일을 보고, 토요일 오후 서울에 들어와 일요일 내내 한국 정부 인사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 탓에 기자들은 휴일을 망쳤다. 곱슬머리 홀브룩은 대국(大國) 냄새를 진하게 풍겨 반감(反感)을

사고 은근한 반미(反美)의 싹까지 트게 했다. 이제 보니 왕이에 비하면 홀브룩은 양반 중의 상양반이었다.


왕이는 주일(駐日) 대사 시절 단정한 매너로 호감(好感)을 사기도 했던 외교관이다.

그랬던 그가 한국을 상대할 땐 유독 오만불손(傲慢不遜)해졌다. 베이징 한·중 외무장관 회담에선 한국 외교부 장관을

30분이나 혼자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러곤 뒤늦게 나타나 훈계(訓戒)부터 시작했다.

"말에는 신용이 있어야 하고 행동에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言必信 行必果)"는 것이다. 이른바 '3불(不) 문제'를 놓고

한국을 닦달하는 소리다. 사드 보복 이후 중국 방문 정치인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왕이의 훈시(訓示)를 들었다.


화를 내도 본국 정부 지시대로 화를 내는 게 외교관이다. 왕이 문제의 본질은 중국이 한국을 만만하게 보고

거칠게 다뤄 길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역사 앞의 책임"이란 말을 꺼냈고,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장애물을 깨끗이 치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중국은 사드가 중국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한국 설명에 과학적 반론(反論)을 제시하지 못했다.

각종 국제회의에서 자유무역의 옹호자가 되겠다고 큰소리치면서도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은 중단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한국을 향해 '역사에 대한 책임'을 꺼내고 "장애물을 치우라"니 황당한 일이다.


한국 정부는 제 돈 내고 중국 매를 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 정부는 출범 전후(前後) 미국과 중국에 '같은 단어로 다른 뜻'을 전하려는 서툰 욕심을 냈다.

그 결과 미국의 의심을 사고 중국엔 시달림을 받는 처지에 몰렸다. 한국이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MD)에 참여하지 않고, 한·미·일 동맹을 맺지 않겠다는 게 '3불'이다.

누구 꾀인지 모르겠으나 국가 주권(主權)의 핵심 사안을 여당 의원이 묻고 외교부 장관이 답변하는 얼렁뚱땅 방식으로

눙치며 넘어가려 했다. 이것이 사달을 냈다.

한국은 무슨 까닭인지 어떻게든 올해 내에 대통령 방중(訪中)을 성사시키려 한다는 인상을 줬다.

중국이 그걸 놓칠 리 없다. '3불'에다 사드 성주 기지 현지 조사와 사드 레이더 중국 방향 차단벽 설치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까지 얹어 내놓고 있다. 미국이 중국처럼 한국 주권을 짓밟고 윽박질렀다면 미국 대사관이 횃불과 촛불에 몇 겹으로

포위됐을 것이다. 정부가 미국엔 '3불'을 뭐라 설명했는지 모르겠다.


1989년 출판돼 10년 동안 각종 세미나의 단골 화두(話頭)가 된 책이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이다.

케네디는 그 안에서 "중국의 미래는 중국이 얼마나 오랫동안 군사 대국을 넘보지 않고 경제 대국에 만족할 수 있을지

그리고 기성(旣成) 패권 국가의 이익을 위협하지 않는 타협적 외교정책을 지속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고 했다.

한동안 케네디의 이 조언(助言)을 따르는 듯싶던 중국은 항로(航路)를 틀었다.

지난 20년 미국이 군사 예산을 2.5배 늘리는 사이 중국은 18배나 확대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당대회에서 2050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을 선언했다.


미국 GDP는 1872년 패권 국가 영국을 앞질렀지만 미국이 영국 자리를 차지하기까진 70여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중국이 숭늉부터 마실 형편은 못 된다.

중국이 지금대로 행동한다면 '중국 꿈'의 완성은 한국엔 악몽(惡夢)의 출발이 될지 모른다.

그 시대 한국의 최우선 국가 과제는 중국의 강압(强壓)에 맞서 국가 주권의 존엄(尊嚴)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필자가 왕이를 보고 홀브룩이 양반인 줄 아는 데 30년 넘게 걸렸다.

그렇듯 중국 보고 미국이 양반인 줄 아는 날이 오게 될 터이다.


1873년 일본 특명전권대사 소에지마 다네오미(副島種臣)가 청(淸) 황제 동치제(同治帝)를 알현할 때 중국은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요구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인조(仁祖)가 청 태종에게 했던 절이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유신 후 5년밖에 안 돼 국력(國力)이 충실치 못했지만 소에지마는 끝까지 버텨 서서 경의를 표하는

입례(立禮)를 관철했다. 그게 청·일 관계의 한 틀을 정했다. 기개(氣槪)가 국력 못지않은 힘을 발휘한 경우다.

벼락부자 돈 냄새와 골목대장 주먹 자랑을 벗어나지 못한 중국을 상대하려면 쓸개가 있어야 한다.

'쓸개 외교'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