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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안보 돌다리' 천 번이고 두드려라

바람아님 2019. 3. 2. 08:34

세계일보 2019.03.01. 01:21


5200만 목숨 걸린 안보에는/
0.001% 허점 있어서도 안 돼/
북·미 회담이 핵 폐기 보장 못해/
'가짜 안보'에 속으면 망국 위험

사기를 당한 경험이 있는가? 한 번 사기를 당하면 누구나 조심하게 마련이다. 만약 사기꾼이 열 번이나 속였는데도 그를 믿는다면 바보라는 핀잔을 듣게 된다. 북한은 그동안 대를 이어 백 번도 넘게 우리를 속였다. 그런 북을 믿는다면 역사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것이다. 더구나 안보는 사기처럼 돈 문제가 아니라 5200만 목숨이 걸린 일이다. 0.001%의 허점도 용납되지 않는 중대 사안이다.


우리 속담에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라는 말이 있다. 안보야말로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마땅히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두드리고 또 두드려야 한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국민들을 향해 “아직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의구심을 갖거나 심지어 적대와 분쟁의 시대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듯한 세력도 있다”고 소리친다.

배연국 논설위원
어제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이 북핵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지만 세 가지 맹점이 있다. 우선 미국은 북한이 핵을 몇 개 가졌는지 백지상태다. 둘째로 핵탄두는 대략 주먹 크기만 하다. 북이 숨기면 찾을 길이 없다. 마지막으로 협상 방식이 안고 있는 맹점이다. 시험을 칠 경우 문제는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이 내는 게 상식이다. 북·미 협상은 북이 핵 있는 곳을 리스트로 제시하면 미국이 그걸 검증하는 방식이다. 학생이 출제범위를 미리 정하는 격이다. 모든 핵 물질·무기에 대한 검증과 폐기를 담보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협상이 잘 진행되더라도 ‘완전한 비핵화’보다는 ‘충분한 비핵화’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본다. 북·미 정상이 서로 만족할 정도의 핵 폐기에 합의한 뒤 전량 폐기로 포장해 각자 정치적 이득을 챙기는 것이다. 어제 협상 결렬은 그런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완전 핵 폐기가 어렵다는 것은 북의 핵 노정만 봐도 단박에 알 수 있다. 김일성은 6·25전쟁이 끝나기도 전인 1953년 3월 소련과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 핵 개발을 시작했다. 초강대국 미국과 싸우면서 자신의 권력 유지와 대남 적화를 위해 이만한 게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김정일·정은 부자는 몰래 핵을 만들면서 남한 특사단에게 “한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속였다. 그렇게 연막을 쳐놓고 60년여 만에 핵을 손에 쥐었다. 국제사회가 폐기를 압박하자 조선중앙TV는 “핵 포기는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이 북의 본심이다.


우리가 작금의 핵 협상과 평화 논의에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북의 노림수가 숨어 있는 까닭이다. 북한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유엔사령부와 주한미군을 몰아내려 한다. 일전에 김인철 유엔 주재 북한 외교관은 “한국의 유엔사는 괴물과 같은 조직”이라며 유엔사 해체를 주장했다. 이제 남북이 평화롭게 살기로 했으니 유엔사가 남한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유엔사와 미군을 거론 않겠다던 기존 약속을 뒤집은 기만술임이 분명하다.


사실 더 우려스러운 쪽은 우리 내부다. 서울 도심에선 반미 시위가 무시로 열린다. 한 진보단체 인사는 “미군은 우리 민중을 죽이고 무단 침입한 점령군”이라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미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자”고 외쳤다. 참석자들은 박수를 쳤고, 경찰은 뻔히 구경만 했다. 해방 직후에도 똑같은 소리가 나왔다. 연일 계속되는 반미 시위 속에 1949년 6월27일 미군이 이 땅에서 완전히 떠났다. 1년도 안 돼 전쟁이 터져 수백만이 죽었다.


정치철학자 칼 포퍼는 “평화는 무력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국가 안에서 평화가 유지되자면 경찰이 무장돼 있어야 하며, 범죄자들과 타협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평화가 이뤄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나라 안에서 범죄자와 타협할 수 없듯이 나라 밖에서도 적과 협상해 평화를 얻을 순 없다. 유사 이래 그렇게 평화가 유지된 예가 없다.

북과 대화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대화를 하더라도 대비는 해야 한다. 지금 이 땅에서 횡행하는 ‘가짜 안보’에 가슴을 치지 않는다면 훗날 땅을 치는 일이 생길 것이다.


배연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