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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北 요구 '일부 제재 해제'는 제재 껍데기만 남기려 한 것

바람아님 2019. 3. 3. 08:52


조선일보 2019.03.02. 03:15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1일 새벽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가 미국에 요구한 것은 전면적 제재 해제가 아니라 일부 해제"라며 "유엔 제재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중 민수 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이 모든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 것을 반박한 것이다.

그러나 리용호가 말한 '5건'은 사실상 유엔 제재 전부에 해당한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는 2006년 1 차 북핵 실험 때부터 시작됐지만 북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진짜 제재는 2016년 4차 핵실험 이후부터였다. 북 수출품 1~3위에 해당하는 석탄·섬유·수산물을 전부 막았고 '달러 박스'였던 해외 노동력 송출을 차단했다. 북에 유입되는 유류(油類)도 제한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의 핵·ICBM 도발을 더는 묵과할 수 없어 찬성표를 던졌다. 그 결과 지난해 북의 대중(對中) 수출은 전년보다 90% 줄었다. 북한 GDP는 곤두박질치고 지도부는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2016년 이후 5개 제재는 김정은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불러낸 제재의 99%나 다름없다. 리용호는 '민생'을 내세웠지만 허울에 불과하다. 2016년 이전에 유엔 안보리가 당·군용 석탄 수출을 막으면서 민수용은 열어줬더니 북은 석탄 수출을 죄다 민수용이라고 신고했다. 또 그럴 것이다.

북한은 이번에 제재를 다 풀어달라고 요구하면서 내놓은 카드는 영변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 시설이다. 이 중 25년이 넘은 플루토늄 시설은 '고철'로 아무 의미가 없다. 영변 우라늄 시설은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북이 2010년쯤 스스로 이를 외부에 공개할 때부터 '협상용'이었다. 북의 진짜 핵 생산 기지는 이곳이 아닌 다른 비밀 농축 시설 2~3곳이다. 이번에 미국은 그 비밀 시설 중 한 곳을 제시하며 폐기를 요구했다. 이에 응하느냐가 김정은 비핵화가 사기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김정은은 놀라면서 거부했다. 진짜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 왜 거부하나.

리용호는 영변 핵 시설을 "줄 수 있는 가장 큰 비핵화 조치"라고 했다. 김정은은 미국 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를 만나 영변 '고철'만 내주는 비핵화 쇼로 제재의 99%를 허물려 했던 것이다. 제재가 무너지면 북은 비밀 농축 시설과 수십 개 핵탄두를 폐기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다시 제재를 복원할 수도 없다. 북은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다. 이제 트럼프도 북의 이런 전술을 파악했다. 오직 한국 정부만 무조건 김정은을 믿자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