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원칼럼] 창파에 뜬 돛단배 나라
세계일보 2019.08.20. 00:21
외교는 누가 책임질까. 외교부 장관이 아닌 것 같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된 지난달 강경화 장관은 아프리카로 갔다. 6박7일 동안. 외교를 쥐락펴락하는 곳은 청와대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그곳의 핵심인물이다. 이런 말을 했다.
“미국에 뭘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순간 제가 ‘글로벌 호구’가 된다.”
자신이 그리 된다는 걸까, 나라가 그리 된다는 걸까. 그가 미국으로 날아간 때는 “미국을 지렛대로 삼아 일본 횡포를 막아야 한다”던 시기다. 그때 외교부 장관은 아프리카에 있었다.
한·미동맹? 역시 깨진 독으로 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조롱한다. “임대아파트 세를 올려 받기보다 한국에서 10억달러를 받기가 더 쉬웠다”고. 입이 가벼운 그는 그렇다 치고, 미국의 보수인사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한국을 품고 가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좌파단체 몇 명이 길을 가로막는다고 3년째 성주 사드기지에 공사 자재 운반 차량조차 출입하지 못하는 현실을 두고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런 생각은 하지 않을까. “지금의 한국 정부는 미국 편이 아니다.”
미국에 간 김현종. ‘싸늘한 시선’에 도와 달라고 입도 떼지 못한 것은 아닐까.
세계금융위기가 휩쓸던 2008년. 제2 국가부도 위기를 걱정하며 미국으로 달려가 도움을 구했다. 300억달러 통화스와프협정은 그 결과다. 한국은 그에 기대어 고비를 넘겼다. ‘동맹’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한국 때리기’도 미국이 더 이상 한국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중국, 러시아에게라도 환대를 받을까. 웬걸. 중국의 사드 보복은 이어지고, 러시아 군용기는 독도 영공을 휘젓는다.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도 무시로 침범한다.
북한은? 더 가관이다.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신뢰를 쌓았다”고 했던가. 문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했다.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한 인물”이라고도 했다. 정부가 신줏단지처럼 여기는 남북군사합의서. 북한은 해진 종잇조각쯤으로 여긴다. 남한을 초토화할 신형 탄도미사일을 자고 나면 쏴댄다. 신뢰를 쌓았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평화경제? 그것을 이루면 단숨에 일본의 우위에 설 수 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단언컨대 아니다. 왜? 북한은 가난하다. 경제규모를 키우는 소비시장이 되지 못한다. 축적된 기술과 자본도 없다. 자원이 많다는데, 그런 북한은 왜 그렇게 가난한 걸까. 유일하게 내세울 것은 값싼 노동력뿐이다. 그런 상대와 손을 잡아 일본을 따라잡는다고?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대통령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망상을 국민에게 심는 걸까. “통일비용 2100조원”(영국 유리존SLJ). 그것은 북한에 쏟아부어야 할 돈이다. 국민 호주머니의 돈이 모자라면 빚까지 내야 한다. 그런 실상을 알고나 하는 말인가.
동네북이 되고도 엉뚱한 망상을 정책의 기둥으로 삼는 정치. 나라는 창파에 뜬 돛단배로 변한다. 흡사 조선말 같다.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빗나간 생각’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김세형 칼럼] 평화경제 진짜 해보면 한국 어떻게 될까
그러나 더민주 일각에서는 여전히 남북한 경제협력을 하면 일본을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 이가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후지TV에서 평화경제의 실체를 해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의 일본전문가 가운데 마침 도쿄에 있어 이 토론회에 참석하고 온 사람이 있는데 그날 분위기를 전했다. "일본이 한국에 앞서는 분야는 단연 기술이지 규모는 문제가 아니었다. 요새는 소비자가 직구를 통해 세계 어느 나라 물건이라도 구매하기 때문에 시장 규모는 큰 의미가 없다. 문 대통령은 규모와 내수시장을 말했는데 누가 그렇게 써준 것인지 이상하다"며 일본을 단숨에 따라잡기엔 어림없는 발상으로 토론을 마무리하더라는 것이다.
사실 경제학에는 소득주도성장이란 이론도 없지만 평화경제라는 용어도 없다. 평화경제는 신조어를 좋아하는 현 정부가 남북한 경제협력이란 애매한 의미로 지어낸 개념이다.
물론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폭발적인 성장을 한다면 계산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비핵화라는 거대한 관문을 통과해야 유엔 제재가 풀려 북한으로 개발자금이 흘러들어갈 수 있다. 그 이전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도 어림없다.
이제 하나의 가정법으로 트럼프-김정은이 연내 3차 회담을 하고 북이 미국의 비핵화 요구를 충족시켜 부분적 남북경협이 허용된다고 하자.
그러면 평화경제 효과가 어느 정도 될까.
과거 금강산, 개성공단으로 북에 흘러들어간 총자금은 10억달러 정도다. 우리 돈으로 1조2000억원이면 이번에 국회에 통과한 추경예산이 약 6조원의 5분의 1밖에 안 돼 그것으로 한국 경제가 영향을 받은 것은 없다. 그저 컨트리 리스크가 조금 완화된 정도일 게다. 좀 더 효과가 있으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좋아하는 동북아 철도공동체 같은 것이 실현되는 경우다. 북한 철도 현대화를 위해 작년 11~12월 경의선, 동해선을 각각 조사하고 착공식까지 마쳤는데 당시 총비용이 최대 45조원, 작게는 2조5000억원이 드는 것으로 산출됐다. 건설비용을 누가 댈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지만 남한 측에 전액 부담하는 것을 은근히 바라더라는 것이다.
북한은 시장도 작고 핵개발, 미사일 등 군사 분야 외엔 기술도 전무한 실정이다.
이러한 북한과 평화경제를 깊이 할수록 사실 돈은 우리가 전부 대야 한다. 우리가 그럴 형편이 안 되면 국제기구(IMF, 세계은행, ADB) 등에서 돈을 빌려 컨소시엄을 형성해 세계 여러 나라 자금을 끌어들여 공동으로 하는 게 옳다. 우리 형편은 조세수입이 모자라 국가부채가 올해만도 50조원 이상 급팽창 중이다. 실제로 남북 간 비핵화, 경협 문제가 깊숙하게 전개되려고 할 무렵 당시 김동연 부총리는 G20 재무장관회의 등을 통해 북한이 IMF 가입을 추진할 경우 적극 지원해달라는 부탁까지 했었다. 북한이 IMF, 월드뱅크 등의 자금을 빌려 쓰려면 경제 현실에 대한 실사를 2년 이상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북한 경제를 MRI로 스캐닝하듯 투명하게 공개할 용의가 있어야 한다. 1997년, 2000년 두 번에 걸쳐 북한은 IMF 가입 의사를 밝혔다가 "그럼 경제 실사를 시작하자"는 말에 도망가 버린 전력이 있다.
이렇듯 평화경제로 가는 길목을 북한 스스로가 차단하고 있는데 우리가 단숨에 일본을 따라잡을 요술방망이로 말하는 건 우습다.
이제 더욱 본격적인 평화경제, 즉 남북한 경제통합-그것이 통일이든지, 연방제 형태이든지-으로 가면 어떤 상황을 우리는 맞이하게 될까.
그 시나리오는 동서독 통일 이후 경제 상황 전개를 통해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 수 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1개월간 작업을 거쳐 1990년 10월 3일 흡수통일을 하는 기간 중 서독의 주가는 30% 오르고 마르크화는 8.7% 오르는 축복으로 작용했다.
통일 전 서독 GDP는 2조2452억달러, 동독 2837억달러로 약 8대1이었다. 현재의 남북한 경제력보다 20년 전 동서독 경제파워가 훨씬 컸고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더더욱 그렇다.
동독인들이 우르르 서독으로 몰려들고 정부는 재정을 풀어 복지를 늘리니 통일 초반에는 경제가 활황이었으나 동독인들이 너무 몰리자 실업 등 사회문제가 야기됐다. 그래서 동서독 화폐를 1대1로 쳐주고, 동독에 머물러도 복지를 책임진다고 하자 이번엔 몰려온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하여 1992년, 1993년, 1994년 경제성장률을 보면 서독은 1.2%. -2.3%, 1.6%로 죽을 쑤고 동독은 8.5%, 4.9%. 8.4%로 큰 폭 성장을 이뤘다.
설상가상 당시 걸프전이 터져 주가도 폭락하고 해외자금도 이탈했다.
이후 서독에 죽음의 고난이 시작되고 2003년엔 독일은 '유럽의 병자'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살려고 발버둥치기 위해 '하르츠 개혁'을 시작했다.
무조건 노조 임금을 동결해 독일 기업들이 폴란드 헝가리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10년간 죽음의 고통을 치렀다. 한국의 민노총이라면 이런 고통을 받아들였을까.
통독 당시 통일비용을 1조~2조마르크이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20년을 지나고 보니 한화로 3000조원 이상이 들어갔다.
재원이 부족해 통일세를 부과하자(1995년) 납세자연대는 위헌소송을 제기하는 상황도 연출됐다.
통일 20년을 맞아 국민 여론조사를 해놓은 내용을 한 번 검색해보시라. 통일을 잘못했다고 말하진 않지만 아직도 서독은 1등 국민, 동독은 2등 국민이라 하여 서로 앙금이 크다.
통일 전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 18년간 574억달러, 연평균 32억달러를 지원했다. 지금으로 치면 320억달러는 될 것이고 연간 30조원이 훨씬 넘게 도와줬다.
독일의 '평화경제'는 분단 45년 만에 통일하는 데도 이렇듯 고난의 연속이었다.
여러 기관들이 추계치로 수년 전에 발표한 숫자들을 보면 KDI가 급변 시(돌연 통일) 2조1400억달러, 그러니까 2500조원쯤으로 계산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은 30년간 독일식으로 하면 2조달러, 베트남식이라면 3조~5조달러가 든다고 했다. 6500조원까지 예상하는 기관도 있다.
통일비용 3000조원의 근거는 독일의 20년간 실제로 든 돈이 1인당 4000만원을 감안한 것인데 남북한 인구수에 소득수준을 동일하게 맞추려면 1경9000조원까지 나온다는 계산도 있다.
중구난방 어지러운 숫자들의 나열이나 분명한 것은 북한처럼 한쪽이 형편없이 기운 분단체제를 통일로 끌어들이는 작업은 원자폭탄 투척에 비유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는 순전히 경제적인 문제일 뿐 동서독처럼 갑자기 통일이 찾아오고 남북한이 투표하여 대통령과 여당을 정하는 과정에서 표퓰리즘이 난리 친다면 그건 전혀 별개 문제다. 요즘처럼 정치인들이 선동하고 국민이 바짝 정신차리지 않으면 한국이 남미의 볼리비아 짝이 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통일이 숙명이라면 고난의 길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쪽으로 봐도 평화경제는 고통의 길이다.
그런데 그 고난을 단숨에 일본을 따라잡는 비책으로 표현하는 것은 무슨 셈법인가.
[김세형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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