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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120] 얼굴

바람아님 2014. 1. 13. 11:36

(출처-조선일보 2011.07.18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까치는 전형적으로 영역을 방어하는 텃새라서 자기 둥지 주변에 위험 요소가 발생하면 시끄러운 경계음을 낸다. 그러니까 사실은 까치가 울어서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까치가 울어대는 것이고, 옛날 시골에서는 그 낯선 사람이 대개 반가운 손님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잘 모르는 사람을 흔히 낯선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낯이 설다"라고 얘기할 때 낯은 '눈·코·입 따위가 있는 얼굴의 바닥'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우리가 낯이 설다고 할 때에는 의복이나 행동보다 주로 얼굴을 보고 판단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뿐 아니라 까치도 낯을 가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행동생태연구실의 이상임 박사와 내가 함께 이끌고 있는 까치장기생태연구사업단은 거의 15년째 까치의 행동과 생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우리 연구진은 나무 높은 곳에 있는 까치둥지에 접근하기 위해 이삿짐센터의 사다리차를 사용하는데, 지난 몇 년간 특별히 자주 사다리차를 타고 둥지에 가까이 접근했던 한 서울대 연구원을 까치들이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걸 관찰하곤 본격적인 실험에 들어갔다. 그 연구원과 체격이 비슷한 다른 연구원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함께 나타나도 까치들은 영락없이 그 연구원만 공격했다. 까치가 사람의 얼굴을 식별하고 기억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확실한 증거를 얻어냈다. 우리는 이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동물의 인지(Animal Cognition)' 최근호에 발표했다.

까치는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새로 까마귀와 앵무새에 이어 세 번째이다. 지난 7월 3일 영국에서 열린 실험생물학회 2011년 정기학술대회에서는 비둘기가 네 번째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파리대학 연구진이 우리와 매우 비슷한 방식으로 관찰과 실험을 진행하여 도심 공원의 비둘기들도 자기들을 특별히 많이 괴롭힌 사람의 얼굴을 기억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아침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지만, 저녁 까치가 울면 초상이 난다'고 했다. 히치콕의 영화 '새'에서 공격 대상을 물색하던 새들의 예사롭지 않은 눈초리를 기억하는가. 어쩌면 히치콕은 그 옛날 이미 이 같은 새들의 인지 능력에 대해 다 알고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