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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3] 강의실이라는 무대

바람아님 2020. 3. 19. 07:42

(조선일보 2020.03.19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강의 중인 강의실 사진뉴욕에서 매년 3월 17일 개최되는 '성 패트릭스 데이' 퍼레이드가 250년 만에

취소되었다. 그에 맞추어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25주년 기념 공연을 계획했던

아일랜드의 전통 무용 '리버댄스(Riverdance)'도 취소되었다.

퍼레이드의 200만 관중 특수를 기대했던 바와 레스토랑도 모두 닫았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 뉴욕의 모든 주립대학과 사립대학이 학기가 끝날 때까지

온라인 강의 체제로 전환했다.

한국 대학 상황과 비슷하다. 며칠 전 강의실 마지막 수업을 마쳤다.

이제 나의 무대도 내 공연을 감상하던 관객도 없어졌다. 한편에서 미래 교육의

모델이라고 하는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면서 갈등이 교차한다.

강의실 수업과 인터넷 수업의 차이는 연극과 영화 차이와 같다.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카메라 기술로 관객과 만나는 영화는 한 방향의 의도된 커뮤니케이션이다.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같이 아무리 장대한 스케일의 영화도 실제 무대에 서 있는 배우의 기운보다 강렬할 수 없다.

배우가 관객과 같은 공간 안에서 실시간으로 교감하기 때문에 그렇다.

강의는 지식의 전달이 아니다. 라이브 공연을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는 일이다.

실시간 대면 강의는 생각보다 강력한 상상력과 전달력을 가지고 있다.

평생 잊히지 않는 좋은 강의는 그 시간과 공간의 기억을 함께한다.〈사진〉


교수가 강단에 오르는 것은 배우가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과 같다. 같은 작품, 같은 내용이라도 공연은 매회 다르다.

이제 강의실에서 그 살아 있는 연기를 펼칠 수 없다. 학생들의 눈빛, 웃음, 동작 하나하나와 교감할 수 없다.

인터넷 강의는 경계가 없고, 확장, 반복, 기록의 장점이 있으며, 팬시한 편집도 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유튜버가 되어 카메라 앞에서 표정 짓고 허공에다 주절거릴 생각을 하니 아주 갑갑하다.

하버드 대학교수인 제자와 통화하며 하소연했다.

"여기도 이미 모두 온라인 강의다. 교수님은 싫어하실 줄 알았다"며 웃는다.

불 꺼진 브로드웨이의 극장가처럼 이번 학기 나의 공연은 막을 내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8/20200318052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