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4.14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녹음이 우거진 숲인데도 고요하기만 할 뿐 활기가 없는 이곳은 지하 세계다.
그리스 신화 속 최고 시인이자 음악가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독사에게 물려 생명을 잃은 후
슬픔에 괴로워하다 저승으로 찾아간다.
그의 리라 연주와 노래에 감동한 저승의 신 하데스는 오르페우스에게 에우리디케를 내주지만, 이승에 도달하기 전까지
절대 그녀를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프랑스 화가 카미유 코로(Camille Corot·1796~1875)는
이 둘이 마침내 지하 세계를 빠져나와 이승에 도달하기 직전의 순간을 그렸다.
카미유 코로, 지하 세계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1861년, 캔버스에 유채, 137x112㎝, 휴스턴 미술관 소장.
코로는 신고전주의의 논리 정연한 공간 구성과 인상주의의 감각적 색채를 매끄럽게 결합한 낭만적 풍경화의 대가로
칭송받았다. 그는 화면 오른쪽에 검은색에 가까운 짙푸른 나무들을 뚜렷하게 그려두고 왼쪽으로 갈수록 점점 흐려져
끝에 이르면 뿌연 안개가 눈앞을 가린 듯 어슴푸레한 회색으로 가득한 공간을 만들었다.
영혼만 남은 죽음의 세계에서 이승으로 나아가는 오르페우스의 여행이 시간을 두고 펼쳐지는 것 같다.
그림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색인 붉은 망토를 두른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횃불처럼 치켜든 채 힘차게 걷는다.
죽음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에우리디케는 힘없이 그 뒤를 따르고, 멀리서는 흐릿한 유령들이 이들을 지켜본다.
하지만 이승의 문 앞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본 오르페우스는 영영 에우리디케를 놓쳐버리고
그 뒤로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비극적 결말을 알고서 이 그림을 보면 안 그래도 스산한 화면이 더욱 쓸쓸하다.
힘들게 여기까지 온 김에 조금만 더 참았으면 행복했을 것을. 역시 만사에 방심은 금물이다.
원문 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13/2020041304010.html
게시자가 추가한 큰이미지.
'文學,藝術 > 아트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원한 봄[이은화의 미술시간]〈106〉 (0) | 2020.04.17 |
---|---|
[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사이 톰블리 | ‘낙서 같다?’…알고 보면 ‘창조적 충동’ (0) | 2020.04.15 |
[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앤디 워홀…발랄한 팝아트보다 ‘죽음’에 더 관심 (0) | 2020.04.14 |
돈의 욕망[이은화의 미술시간]〈105〉 (0) | 2020.04.10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20] '봄' 앞에 서면 느낄 수 있는 것 (0) | 2020.04.07 |